[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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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아내는 날마다 의무적으로 남편에게 키스를 해야 했다. 사랑을 나누는 로맨틱한 입맞춤이 아닌, 술을 마셨는지 '입검사'를 받은 것이다. 이는 데면데면한 6촌끼리도 딥키스를 해야 했다. 금주(禁酒)는 법적인 강제사항이었고, 간혹 술을 마시다 들키면 남편이 죽여도 할 말이 없었다. 술을 마시면 통제력을 잃고, 남편 몰래 간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술이 사람을 잡고, 술이 사랑을 잡는 날라리 습속이었다.

▶병권(甁權)을 잡은 소대장이 수류탄(병뚜껑)을 깐다. 다함께 자폭하자고 한다. '소폭(소주+맥주)'을 말기 시작하면, 소주는 몸서리치며 거품회오리를 일으킨다. 맥주는 이내 그 빛깔을 잃고 혼절한다. 폭탄주는 섞는 순간 술이 아니라 원형(原形)이 없는 술이 돼버린다. 사람들은 일찍이 '섞는 것'에 집착하고 '섞는 것'에 매료되어 음주 토템문화의 궤적을 그려왔다. 섞지 않으면 남들과 섞이지 못할 거라는 강박관념은 취기(醉氣)가 아니라 치기(稚氣)다.

▶1983년(군사정부) 당시 춘천 기관장회의에선 2군단장이 술자리를 주도했다. 군단장은 저녁 자리마다 위스키를 맥주잔에 가득 따라 돌렸다. 연로한 참석자들은 '군인들 따라 마시다가 죽겠다'며 혀를 찼다. 이때 춘천지검장으로 부임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위스키 반, 맥주 반을 섞어 '폭탄'을 제조했다. 알코올 도수를 희석시킨 것이다. 이 폭탄주 문화는 대전에서 절정을 이뤘다. 박 전의장이 대전지검장으로 근무할 때 또 한 번 폭탄주 병권자로 이름을 날렸고 '심스 그립(엄지와 약지로 잔을 거머쥠)'의 창시자 심재륜 지검장도 대전(大戰)의 선봉에 섰다.

▶술은 ‘사회의 음식’이라고 한다. 그 사회의 성격을 나타내는 측정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사회적 거울’이기도 하다.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자는 폭탄주 문화는 '동시에 망가지길 원하는' 시한폭탄이다. 간(肝)이 미처 분해할 새도 없이 마시니 휘발성 또한 강하다. 오늘밤도 여기저기서 '폭탄'이 터지고 있다. 무엇이 이토록 사람을 갈구하게 만드는가. 섞이는 것은 희석이다. 대충 섞이면 남들에게 묻어가는 것이 되니까 싫은 것이다. 사람은 독할수록 겉이 순하다. 반대로 술은 순할수록 속에서 쌓여 독해진다. 대강, 눈치껏 살기 싫어 밤새도록 오롯이 게워내면서도 취한다. 삭히고 삭힌 마음의 숙성을 마신다. 이는 발효된 세월을 마시는 게 아니라, 세월을 발효시켜 마시는 것이다. '자폭하는 소폭의 시대.' 우리는 취하고 싶고 망가지고 싶다. 이건 스스로를 달래는 즐거운 자해다. 잊고 싶어서, 잊지 않기 위해서 오늘밤도 빛바랜 어둠은 술을 삼킨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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