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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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65일은 챙겨야 할 날과 챙겨먹을 날들이 너무나 많다. 1990년대 이후 청소년들은 매달 14일을 포틴데이(fourteen day)로 정해 선물을 주고받는다. 1월 14일 다이어리데이,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필두로 3월 14일 화이트데이, 4월 14일 블랙데이(솔로들이 짜장면을 먹으며 검게 타버린 마음을 위로하는 날), 5월 14일 로즈데이, 6월 14일 키스데이, 7월 14일 실버데이(반지 선물), 8월 14일 그린데이(연인과 삼림욕), 9월 14일 포토데이, 10월 14일 와인데이, 11월 14일 무비데이, 12월 14일 허그데이(포옹하며 마음을 확인하는 날) 등이다.

▶사제 밸런타인은 로마황제의 명령을 거부하고 사랑에 빠진 연인의 결혼식 주례를 섰다가 처형당한 인물이다. 그래서 사랑의 수호자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이젠 ‘밸런타인’은 이름만 빌려줬을 뿐 연인들에게는 ‘초콜릿’이 수호자다. 우리네 세시풍속 중에도 ‘연인의 날’이 있었다. ‘경칩’날엔 멀어진 정을 다시 잇고 싶은 부부, 연애하고 싶은 처녀 총각들이 은밀히 숨어 은행을 나눠먹었다. 은행나무 암수란 게 서로 마주 바라보고만 있어도 사랑의 결실이 오간다는 믿음 때문이다. 또 칠석(七夕)엔 달콤한 증편, 참외, 호박부침개를 먹으며 질펀한 오작교 사랑을 나누었다.

▶11월 11일은 서양식 변종과 순진한 토종이 한판 붙는 날이다. 이날은 보통 ‘빼빼로데이’로 알고 있지만 ‘농업인의 날’이기도 하다. 흙에서 나서, 흙을 벗 삼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서 흙 토(土)자가 겹친 '土月土日(11월 11일)’을 법정기념일로 정한 것이다. 수많은 기념일들과 맞서 싸우는 신토불이 기념일 중 하나다. 인삼데이(2월 23일), 삼겹살데이(3월 3일), 오리·오이데이(5월 2일), 오겹데이(5월 5일), 아구데이(5월 9일), 유기농데이(6월 2일), 육육(肉肉)데이(6월 6일), 추어탕데이(7월 5일), 복숭아데이(7월 중복·中伏), 포도데이(포도송이를 닮은 8이 두 번 겹치는 8월 8일), 쌀데이(8월 18일 八+十+八=米), 구구데이(9월 9일·닭고기), 배데이(10월 22일), 사과데이(10월 24일:사과를 주고받으며 사과하는 날), 한우데이(11월 1일), 단감데이(11월 4일)가 토종이다.

▶무엇인가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날들을 챙기다보면 정작 생일을 잊어버려 낭패를 보기도 한다. 사랑과 달콤함은 알면서도 속는다. 우리는 사랑을 기억하려 애쓰다가 사람을 잊고 살고, 사람을 기억하려다 더 소중한 사랑을 잊고 산다. 기억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 아닌가. 사랑하는데 왜 안 챙기냐고?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고달픈 세상에 사랑타령만 하다간 “미쳐버린데이~”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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