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앞둔 대전 인동 어느 독거노인의 겨울

대전시 동구 인동 240번지.

철로를 따라 늘어선 슬레이트 집들이 겨울바람에 쓰러질 듯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한낮의 기온도 영하권을 맴돈 8일 오후, 이모(71) 할아버지는 하얗게 소진한 연탄을 문 밖으로 내놓고 있었다.

이 할아버지가 사는 방안은 냉기만 간신히 면한 채 썰렁함으로 가득했고, TV에서 나오는 뿌연 불빛만이 방안의 어두움을 밝히고 있었다.

2평 남짓한 방에서 할아버지는 그렇게 하루종일 TV만 본다고 했다.

젊었을 적 자신의 아이를 돌보지 못해 지금은 생사조차 알 수 없다는 죄책감으로 30여년 넘게 홀로 지내 온 이 할아버지는 국가에서 지급되는 생활보조금으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꾸려가고 있다.

방세 3만원, 각종세금 1만원, 부식비 등으로 소비되는 보조금은 말 그대로 최저의 생계만을 가능케 한다고 했다.

연탄비를 아끼려 하루에 두 장으로 버틴다는 할아버지는 동행한 동사무소 직원이 "지난번에 나온 연탄이 벌써 떨어졌느냐"고 묻자 손사래를 치며 "아녀 아녀! 많이 남았어, 그래도 아껴야지, 국가에서 준다고 함부로 쓰면 쓰나"며 싱긋 웃는다.

담배 한개비를 입에 물고, 한숨 섞인 연기를 내뿜던 할아버지는 지난주에 걸린 감기가 아직 완쾌되지 않아 담배를 피우는 내내 간간이 기침을 해댔다.

그리고 봄이 오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5월이면 이곳이 재개발돼 할아버지는 자신의 좁은 방조차 내주고 어디로 가야 할 지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 조용히 저세상으로 갔으면 좋겠어, 그곳에 가면 최소한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이잖아"

자신과 아이를 버리고 가출한 아내에 대한 원망도, 자신의 삶에 대한 번민도 이제는 어느덧 사라지고 할아버지는 생사를 말했다.

이렇게 할아버지의 겨울나기는 차라리 봄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한이 없다"라는 한 마디로 힘겹게 넘어가고 있었다.

낡은 문을 닫고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자 구름 한 점 없는 시퍼런 겨울하늘에 눈이 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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