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호 편집부·제2사회부 차장

잠 못 드는 '소치의 밤'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지난 8일(한국시간) 화려한 개막식을 갖은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은 어느덧 그 피날레까지 3일 만을 남겨뒀다(24일 01시 폐막식). 대한민국은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조해리·김아랑·박승희·심석희·공상정)와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이상화), 쇼트트랙 여자 1500m(심석희), 쇼트트랙 여자 500m(박승희)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금 2, 은 1, 동메달 1개(20일 오전 11시 현재)로 종합 16위를 달리고 있다.

3회 연속 톱10이라던 목표도 사실상 어려워졌고, 금 6, 은 6, 동 2개로 종합 5위에 올랐던 지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보다도 못 미친 결과지만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노장선수의 말처럼 '단언컨대' 메달은 부족해도 노력은 부족하지 않았다. 하계올림픽의 핸드볼이나 동계의 컬링처럼 비인기 종목이 올림픽 때 유독 재미있는 것은 거기에 메달이 걸려있어서가 아니라 올림픽 때가 돼서야 우리가 그들의 열정에 관심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소치로 향한 71명의 태극전사 모두는 그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달리는 순간, 이미 영웅이고 주인공이다.

'빙속 여제' 이상화는 이번에도 올림픽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는 이번 대회 여자 500m에서 2개의 올림픽 신기록을 작성하며 아시아 최초로 이 종목 2연패를 달성했다. 이상화는 레이스가 끝나자 승부욕 뒤편에 숨겨뒀던 고운 얼굴을 드러내며 눈물을 흘렸고, 대한민국은 감동했다. 4년 전 밴쿠버에서처럼 또 다시 눈물로 국민과 또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4년 전 밴쿠버에서 한국 최초로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 금메달을 목에 걸며 혜성처럼 등장한 모태범은 이번 소치에서는 수성도 도전도 실패했다. 그는 이번 대회 500m 4위, 1000m 12위에 머물며 밴쿠버의 영광과 사뭇 다른 결과를 안겨줬다. 그러나 모태범은 "무조건 반성한다. 그러나 앞으로 4년을 위한 노하우가 생겼다"며 평창의 재기를 다짐했다. 지난 4년 간의 노력이 거짓이 아님을 알기에 그 약속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1994 릴레함메르부터 이번 소치까지 6번의 올림픽에 출전한 이규혁은 지난 13일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 레이스를 펼쳤지만 결국 메달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20여년의 국가대표 생활을 끝낸 36세 '노장' 선수는 금메달 보다 큰 감동을 줬다. 이규혁은 19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올림픽 때마다 울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올림픽 메달이 없는 선수가 됐지만 스케이트를 타는 것이 행복했다"고 말하는 그의 환한 미소는 진정한 올림픽의 의미를 오롯이 담고 있었다.

우리는 소치를 보며 금메달에만 감동받지는 않는다. 예선 탈락한 여자 컬링에도 노메달에 그친 노장의 질주에도 4년 뒤를 다짐한 에이스의 눈물에도 감동한다. 그것은 그들이 지난 4년 간 흘린 땀의 진정성과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채찍질을 인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소치만큼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오는 6월 4일 치러질 전국동시지방선거다. 지난 4일부터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돼 앞으로 각 정당은 승리를 위한 옥석 가리기에 분주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승리가 아닌 행복을 위한 옥석을 가려야 한다. 누군가의 4년 전 약속 또 누군가의 4년의 약속에 대한 진정성을 따져봐야 한다. 소치의 영웅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3~4달 열심히 악수하고 다니실 분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6월 단 한 번 승리의 주역이 아닌 4년 후 영웅이 되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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