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점수 따려다 사고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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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점수 따려다 사고쳤어요”
  • 충청투데이
  • 승인 2014년 02월 10일 20시 54분
  • 지면게재일 2014년 02월 11일 화요일
  •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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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처음 먹어 본 결명자 차를 끓인 숭늉.

시장에 간 아내가 어둠이 깔리고 있는데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늙은이 둘이서 사는 집에 아내가 어디 나갔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걱정부터 합니다.

"우리 이렇게 살다 한사람이 먼저 죽으면 혼자서 어떻게 살지…?" 가끔 이런 얘길 꺼냈다가 아내에게 쓸데없는 얘길 한다고 핀잔을 받기도 합니다. 실제로 두 사람이 있다 한사람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면 세상이 텅 빈 것 같습니다. 평소 내게 살갑게 대하지도 않는 아내가 하루 이틀 집을 비우다 돌아오면 반가워 하는 모습을 보면 아내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가끔 있는 일이지만 오늘도 아내가 대전 유성 장에 간다더니 늦고 있습니다. 배꼽시계가 식사시간을 알립니다. 밥솥을 보니 전기 코드가 빠져 있고 솥 안에는 혼자 먹기는 많고 둘이 먹을 밥은 좀 모자라는 밥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식은 밥을 먹고 아내 밥을 해 놓아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에 전기밥솥에 밥을 그릇에 들어내고 바가지를 들고 다용도실에 있는 쌀을 꺼냈습니다. 그냥 쌀을 씻으려고 하다가 곁에 보니 잡곡 팩에 흑미 같은 게 보였습니다. '이왕이면 맛있게 해줘야지…' 하는 마음에서 흑미도 한줌 집어넣었습니다.

밥을 안쳐놓고 식은 밥을 혼자 먹었습니다.

아내가 없으면 반찬을 찾아 먹을 생각도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김치나 멸치가 있으면 꺼내 먹습니다.

우리 세대들은 남자가 부엌에 나가면 모자라는 사람쯤 취급당하며 살아왔습니다. 아내도 그런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편입니다.

어쩌다 아내가 시장에 가면 설거지나 방청소 정도를 해주면 그게 남자의 역할을 다한 줄 알고 삽니다. 같은 밥이라도 혼자서 먹는 밥은 맛도 모릅니다.

배가 고프니까 허기를 때우는 시간입니다. 칭찬을 받기 위해 설거지까지 해놓고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습니다.

제 생활이 늘 이렇습니다.

밥만 먹으면 컴퓨터 앞에 앉거나 자전거를 타고 금강변을 달리기도 하고 아내 심부름으로 슈퍼나 은행에 다녀오는 게 요즈음의 일과입니다. 컴퓨터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는 새 아내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부엌에서 아내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왜 밥에다 결명자를 넣었어요?" 나는 깜짝 놀라 부엌으로 쫓아 나갔습니다. "결명자라니… 나는 흑민 줄 알았는데…" "아니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렇지, 흑미와 결명자 구별도 못해요?!"

"그럴 리가 없는데… 나는 분명히 흑미를 넣는다고 넣었는데…" 쌀을 꺼낼 때만 해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기도 했지만 다용도실에 불을 켜지 않았기 때문에 차를 끓이려고 잡곡 팩에 둔 결명자를 확인하지 않고 집어넣은 게 화근이 됐던 것입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모처럼 아내에게 칭찬이라도 들을 줄 알고 한 일이 핀잔만 잔득 듣고 말았습니다.

"이 밥 혼자서 다 먹어욧!"

"그러지 뭐, 해로울 것도 없는데…" 지은 죄가 있어 밥솥을 열고 숫가락으로 한 입 떠 넣었습니다. 아~니 이게 웬일입니까?

독자 여러분은 "결명자 밥맛, 상상이 되십니까?" 세상에서 처음 맛 본 결명자 밥맛…!!! 아내가 볼까봐 뱉지도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그 쓴 결명자 밥 한 입 그대로 삼켰습니다.

심하게 잔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그게 끝이었습니다. 이튿날 점심시간에 결명자 밥이 숭늉이 되어 나왔습니다. 결명자 밥은 그렇지만 결명자 밥으로 만든 숭늉은 그런대로 먹을 만 했습니다.

〈이 글은 2월 8일 작성됐습니다〉

참교육 http://chamstory.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