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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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전두환(5공)이 이끄는 신군부는 정권을 장악한 후 곧바로 언론통폐합 조치를 취했다. 언론인에 대한 대대적인 숙정을 단행, 711명을 해직시켰다.

또한 합병과 폐간을 통해 172개 정기간행물의 등록을 취소했다. 지방신문은 '1도1지(一道一紙)'만 남겨놓고 강제적으로 문을 닫게 했으며 방송도 KBS와 MBC만 남겨뒀다. 더더욱 포악스러운 짓은 모든 언론사에 매일 '보도지침'을 하달한 것이다.

안기부(국정원)와 공보처는 신문기사의 크기를 자신들이 지정하고 제목과 면 배정까지도 관여했다. 행여 시국 관련기사가 심하게 나가면 편집국장을 데려다가 뺨을 갈기는가하면 신문을 난도질하는 등 패악을 부렸다.

▶1987년 노태우정권의 6·29선언 이후 신문발행은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신문 창간이 빵틀서 빵 찍어내듯 난립하기 시작했다.

1993년 김영삼정부의 언론자율화 이후엔 전국 일간신문이 당시 32개였으나 86개로 늘었다. 현재 언론사에서 활동하는 기자들은 2만 2000명(종이신문 1만 4000명·방송 2000명·인터넷신문사 5000명)에 달한다. ‘정치기사의 산실’인 국회만 하더라도 종합일간지에, 인터넷, 방송사, 통신사 등 등록언론사만 413곳에 이르고 출입기자만 1400명이다.

▶5공 시절의 보도지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노무현 정부도 '신(新)보도지침'을 만들었다. 부처별 출입기자제를 폐지하고 개방형 브리핑룸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물론 명목은 좋았는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불편한 언론’과의 대면접촉을 끊으려는 의도였다.

취재할 내용이 있으면 개별적으로 묻지 말고, 합동브리핑실을 이용하라는 일종의 ‘칙령’인 셈이었다. 이 선진화방안은 미국에서 본떴다. 미국은 연방수정헌법 제1조에 '언론의 자유'를 명문화하고 언론자유를 모든 자유에 우선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지 못하도록 아예 못 박아 놓은 것이다. 하지만 ‘신 보도지침’은 신문의 난립을 가져왔음은 물론이고, 정부홍보기사만 쓰게 돼 ‘권력의 시녀’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기자(記者)는 말 그대로 '글 쓰는 자'다. 펜은 칼보다 무섭다고 했다. ‘칼’은 베인 자국만 남지만 ‘펜’은 진한 잉크 먹물로 역사에 남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불편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아마추어리즘이 아니라 저널리즘이다.

나팔수가 되어 똑같은 기사, 똑같은 붕어빵 틀을 유지한다면 진실의 눈은 가려진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행정수도 ‘세종’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취재처를 봉쇄하고 기자의 입과 눈을 가리는 신(新)언론탄압이다. 두려운 일은 ‘기자’가 ‘기자’를 막아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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