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 칼럼]
이상윤 대전사랑시민협의회 회장

미국을 방문한 한 여류 작가가 뉴욕에서 겪은 이야기다. 뉴욕의 거리에서 꽃을 파는 할머니를 우연히 만났다. 할머니는 남루한 옷차림에 금방이라도 쓸어질 듯 나약한 모습이었는데, 얼굴은 온통 즐거운 표정이었다. 여류작가는 꽃을 고르며, 할머니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할머니, 뭐가 그렇게 즐거우신가요?” 그러자 할머니는 한껏 미소 띤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왜 즐겁지 않겠어요?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요.”

이어 할머니는 여류작가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가장 슬픈 하루였지요. 그런데 사흘 후에 부활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저는 불행하다고 생각할 때마다 사흘을 기다린답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모든게 정상으로 변해 있는거예요!” 할머니의 답변은 여류작가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슬픈 일이 있을 때 사흘을 기다린다. 이 얼마나 평범하면서도 철학적인 삶의 태도인가? 지금의 고통과 번뇌를 미래에 찾아올 즐거움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녹일 줄 아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무척 교훈적이다. 우리에게도 항상 희망이라는 내일이 기다리고 있기에 꽃 파는 할머니처럼 3일 철학을 통해 이웃과 행복을 나누고 싶다. 가족과 혹은 내가 만나는 이웃들과 내가 가진 철학을 통해 서로 행복을 나눌 수 있다면 우리 주변은 참 훈훈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모두가 화난 사람들 표정을 하고 있다. 잘못 건드리면 화를 벌컥 낼 것만 같아 조심스러워지고, 마음을 열기가 두려워 지기도 한다. 공공장소에서 몇 사람이 함께 모여 대화할 때도 이웃이 있건 말건 이웃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큰 소리로 때론 막말이나 욕이 섞인 말을 한다. 옆에서 오히려 듣기 민망하고, 갈등을 느껴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 사회가 무례해졌을까?

특히 최근에는 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회자된다. 그러나 정작 소통이 필요해서 모인 자리를 보면, 대화는 잠시뿐이다. 이해 관련 문제가 나오면 곧 공격적인 말과 화난 질문을 쏟아낸다. 집단의 주장과 논리만 있고, 타협점을 찾아보고자 하는 협력과 배려를 보기가 어렵다.

이러한 각가지 사회적 불안과 갈등, 소통의 부재 등은 모두 ‘배려’하고 ‘존경’하는 근본적인 철학이 부족한데서 발생한 현상이라 볼 수 있겠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배려와 존경을 표현할 만큼 국격이 높아졌고, 사회적 품격이나 문화수준도 향상됐다.

이제는 이에 걸맞게 배려와 존중으로 품격을 다듬어야 할 때가 됐다. 꽃 파는 할머니의 3일 철학에서 보듯이, 우리 모두 ‘배려와 존중’을 철학으로 삼았으면 한다. 시작은 신의 선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새해의 배려와 존중의 시작은 행복을 기대하고 희망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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