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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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甲子士禍(21)


"전하, 그러시면 신첩의 아비나 한번 인견(引見)하시오소서."

"너의 아비가 내게 아뢸 말이 있다고 청쪼우라더냐?"

"청쪼우라고는 아니하였지만 상감마마의 생모이신 윤비마마께서 억울하게 폐위되신 전말(顚末)을 낱낱이 알고 있는 아비가 상감마마의 원한을 풀어 드리려 하여도 야인(野人)의 몸으로 구중궁궐 깊은 곳에 계시는 상감마마를 뵈올 길이 없으니 이것이 평생의 한(恨)이라고 늘 한탄하는 것을 신첩이 보고 들었기에 아뢰는 말씀이옵니다."

"뭐라고? 너의 아비 사홍이 내 어머님 폐위되신 전말을 낱낱이 알고 있다고? 사홍이 지금 어디 있느냐?"

왕은 임씨의 베갯밑공사에 술이 확 깬 듯 알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날 밤 출타 중이던 임사홍은 왕이 자기 집에 미행하였다는 기별을 받고 부랴부랴 귀가하였다. 그가 귀가하였을 때는 이미 딸 임씨가 왕이 있는 별당 밀실로 들어가고 아들 숭재와 며느리 휘숙옹주가 거기서 물러 나온 후였다.

임사홍은 한 발 늦은 것을 한탄하였으나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 음모가족(陰謨家族)의 용의주도한 배려가 마침내 왕으로 하여금 그를 불러보게 만든 것이었다.

왕이 임씨를 내보내고 임사홍을 불러들였다.

임사홍은 꿇어 엎드려 왕에게 절하고 승후를 아뢰었다.

왕은 의관을 정제하고 앉아 있었으나 어지러운 정사(情事) 뒤끝의 피로한 기색과 흐늘거리는 취태를 감추지 못하였다.

"내 경을 본 지 참 오랫만이구료. 옹주와의 정의(情宜)를 생각해서라도 진즉에 금고(禁錮)를 풀고 조정의 반열에 다시 서게 하려고 배려하였지만 대간들의 반대로 숙제로 미루어 두고 있던 참이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신이 어찌 전하의 은혜를 모르오리까. 신에게 옛 자급(資級)을 다시 내려주시려다 거두신 것은 불효자식 희재의 죄 때문이온데 신이 누굴 탓하오리까. 신이 야인으로 있어도 성상의 은혜로 사오니 만에 하나라도 보은을 하고 죽으려 하옵니다."

임사홍은 머리르 조아리며 아첨의 말을 하였다.

"고마운 일이오, 시임(時任=현직)으로 나라의 녹을 먹는 재상이란 자가 서손녀를 과인에게 바치기 싫어서 부자간에 공모하여 임금을 속이고 업신여기는데, 경은 드물게 아름다운 출가녀로 하여금 시침(侍寢)케 하니 참으로 가상한 일이 아닐 수 없소."

왕은 임사홍이 출가한 딸을 하룻밤 노리개로 바친 것을 충성인 양 추켜세우고 있었다.

"겨우 면추(免醜)나 된 것을 바쳤사온데, 칭찬이 과하시옵니다."

"면추나 되다니, 겸사의 말이오. 경에게 그렇게 요염한 딸이 있는 줄 몰랐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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