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옥 칼럼]
이념으로 덧칠되면 본질 흐려져
일본 닮아가는 모순에 화난 민심
친일-독재 결코 미화될 수 없어

친일-독재 미화, 사실관계 오류, 표절 등의 숱한 비판에 휩싸였던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철저하게 외면 받고 있다. 전국 2300여 고교 가운데 이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단 하나도 없다면 그야말로 굴욕적인 사건이다. 정부-새누리당 차원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노골적으로 비호해왔던 터라 그 충격파가 여간 큰 게 아니다.

당초 15개 학교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할 계획이었지만 그것마저도 사정이 여의치 않다. 해당학교 교사, 학생, 학부모들이 이에 즉각 반발하고 나선 까닭이다. '창피하다. 부끄럽다'는 내용의 대자보가 교내에 나붙거나 홈페이지에 넘쳐난다. 친일-독재 옹호학교로 치부되는 게 싫다고 한다. 한마디로 교과서가 균형감각, 상식을 외면한 후과(後果)다. 다른 이유를 둘러대봐야 설득력이 떨어진다.

교육 수요자들이 반대하니 학교로서도 난감해질 수밖에. 문제의 교과서 채택 철회 수순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하다. 교과서 선정 과정상 권위적인 의사결정 방식도 도마 위에 올랐다. 외부 압력을 받았다는 교사들의 양심선언이 뒤따르고 있다.

이른바 '역사 교과서 전쟁'이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갈등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사건건 이념의 잣대로 재단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고질적 폐단이 만연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좌우 이념 대립의 극치를 본다. 우리 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건가. 인식론의 차이가 첨예하게 맞선다. 대체로 보수파는 '국가론'적 입장이고 진보파는 '민족'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한다.

친일 문제를 비롯해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서로 엇갈린다. 정파에 따라 미화-폄하의 시각으로 덧칠하다보면 부딪히기 마련이다. 역사 교과서는 사관(史觀)-역사 인식을 바탕에 깔기 때문에 서술 내용에 대한 논란의 소지가 다소 불가피한 측면이 있긴 하다. 아무리 그래도 본질적인 사실(史實)을 외면할 수는 없다.

예컨대 친일 독재를 찬양하는 건 국민정서나 우리 헌법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 표기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거나 4·19 민주이념까지 훼손하려는 꼼수들은 마땅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일본 군대 위안부를 일제가 강제동원한 것이 아니라고 우기는 인사들이 어디 한 둘인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상업적 매춘'으로 보는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도 있다. 일제가 우리나라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도 그러하다.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를 그토록 비판하면서도 막상 그 논리를 그대로 답습한다는 건 언어도단이다.

이런 엉뚱한 논리를 두고 일본 언론은 반색을 하고 나선다. '균형 잡힌 역사 교육의 첫 걸음'이라는 요미우리 신문 보도에 정작 군대위안부 피해자의 가슴은 먹먹하기만 하다. 오죽했으면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배포금지 가처분신청을 했을까. 민심이 험악해지는 근본 요인이 이 지점에 있다.

역사의 본질을 정면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각성할 수 있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을 수가 있다. 좌우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역사적 사실을 비틀거나 과장·날조하는 행태는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기 십상이다. 교육현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그 자체가 불행한 일이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학문의 자주성 보장은 어찌 할 텐가.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