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박진환 사회부 차장

최근 여당과 야당, 검찰과 경찰, 언론, 시민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법과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얼핏 보면 '법과 원칙'이라는 대명제를 통해 범국민적 통합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기대도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이유는 여당이 말하는 법과 원칙, 야당이 원하는 법과 원칙, 시민들이 바라는 법과 원칙이 모두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청와대를 기점으로 여당과 검찰, 경찰은 '법과 원칙'을 들어 철도노조에 대해 불법파업으로 규정하며, "관용없는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이 '법과 원칙'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철도노조 집행부가 있다고 알려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강제 진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 등 야당과 노동계에서는 "위법 경찰이 원칙과 국민의 안녕을 따르지 않는 정권의 시녀로 전락했다"며 철도 파업의 원인이 된 철도 민영화를 막기 위한 민영화 방지 법안의 입법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대통령과 총리, 장관 등이 수도 없이 철도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법적 구속력과 안전판이 없었다"면서 "정권이 바뀌어도 구속력이 있는 민영화 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모두가 원하는 이 '법과 원칙'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뤄지고 있다. 바로 국가정보원과 군(軍)의 대선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해야할 국가기관이 대선에 개입해 SNS에 수백만건의 댓글을 달았다는 행위 자체가 충격적이지만 이 사안을 다루는 행태를 보면 과연 2013년 대한민국에 법과 원칙이 있는지 궁금하다. 국정원의 이번 댓글사건을 놓고, 경찰은 수사를 축소 은폐하려고 했고, 권력의 핵심 세력들은 사안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한 검찰의 수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이들은 심지어 사안의 본질을 왜곡시켜 검찰 총수를 찍어 내렸고, 특검을 도입하자는 야당과 시민들의 주장을 묵살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를 왜곡시키고, 특정 후보를 비방하거나 옹호한 기관과 이를 지시한 최종 결정권자를 찾아 처벌하고, 재발을 막기 위한 법·제도를 만들자는 것이 바로 국민들이 원하는 '법과 원칙'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법과 원칙을 수용하자는 측과 수용할 수 없다는 측이 모두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 결과 한 대학생이 붙인 '안녕들 하십니까?'란 대자보가 온·오프라인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현상은 젊은 세대가 안녕하지 못하다고 느낀 현실 속에서 '법과 원칙'이 사라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는 정치권과 국가 공무원들의 불법과 일탈행위를 우리는 너무 자주 목격하고 있고, 법과 원칙을 조롱하는 세력들도 우리 사회에는 적지 않다.

대통령의 친형이자 현직 국회의원이 저축은행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실형을 살았고, 건설업자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받은 국정원장이 구속되는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법과 원칙'을 강요할 수는 없다.

대학 졸업과 함께 수천만원의 빚을 지고,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기성세대들은 진정한 '법과 원칙'을 보여줘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안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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