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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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500년사는 원나라(몽고) 얘기를 빼놓고는 말이 되지 않는다. 원나라는 30년간(1231~1259년) 일곱 번이나 내침했고 100년(1259~1351년)동안 내정을 간섭했다.이들은 인질과 식량, 여자(공녀·貢女)를 보내라고 토색하는가하면, 다루가치(지방관아의 몽골인 장관)를 두라고 종용했다.

인삼, 청자, 비단, 종이, 담비가죽, 사냥매는 기본이고 세자까지 인질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쿠빌라이의 딸을 비롯해 원나라 공주 7명은 고려왕의 부인이 돼 피와 살을 섞었다.

▶통혼(通婚)의 습성은 태조 칭기즈칸이 13개국을 정복했을 때부터 해왔던 작태다. 이들은 80년간 사신을 540여 차례 보내 여자들을 징집해갔다.

순결과 정조관념이 유달리 강한 고려 여인들에게 '공녀'는 참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원에 끌려간 공녀는 대개 황제나 황후, 황족의 시녀가 되거나 처첩이 됐다. 이러니 징발 사신이 한번 오면 닭과 개까지도 편치 않아 했고, 지나간 자리엔 잡초도 남아나지 않았다. 목매달아 죽는 자도 속출했다.

▶고려양(高麗樣·혹은 고려풍)은 고려 식 복식과 음식, 기물이 원나라로 전파된 것이고 '몽골풍'은 반대의 경우다. 전통혼례식 때 쓰는 족두리는 원래 '고고'라고 하는 몽골 여인들의 외출용 모자였다.

또 신부 뺨에 찍는 연지곤지, 상투 대신 정수리부터 앞이마까지 머리를 빡빡 깎는 변발, 소주(아락주), 한우(몽골 소·제주 조랑말), 만두, 설렁탕(슐루)도 몽골서 넘어왔다. 반대로 몽골로 전파된 ‘고려풍’은 어갱(魚羹·생선국), 인삼주, 연죽(담뱃대) 등이 있다.

▶왕과 왕비에게 붙이는 마마, 세자와 세자비를 가리키는 마누라(마노라), 임금의 음식인 수라, 궁녀를 뜻하는 무수리 등도 몽골어에 말뿌리를 두고 있다.

벼슬아치나 장사치, 양아치에서 어미격으로 쓰는 '치'는 다루가치나 조리치(청소부), 화니치(거지), 시파치(매사냥꾼) 등 직업을 나타낸 몽골어의 끝 글자를 취한 것이다. 매와 말과 관련된 보라매나 송골매, 아질개말(망아지), 가라말(검은 말) 등도 마찬가지다.

검증된 바는 아니나 우리가 쓰는 지폐도 원나라에서 발행한 '지원통행보초'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유아의 엉치뼈에서 슬프게 멍이 들어있는 몽고반점처럼 그들과의 인연은 ‘멍에’처럼 시리고 질기다.

※아무튼 모든 걸 차치하고라도 우리가 부르는 '마누라'의 원뜻이 세자비(妃)였다니 놀라운 일이다. 여자들을 왕비처럼 모시지 않으면 그래서 바가지를 긁어대는 것인가. 황송한 남자들은 때때로 말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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