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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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 시민아파트 전용면적은 36~39㎡였다. 방 2개, 거실에 화장실까지 딸려있었지만 거의 판잣집(33㎡·10평) 규모였다. 하지만 이 쪽방도 서민들에겐 아방궁이었다.

1972년 말 '주택건설촉진법'에 규정한 국민주택 크기는 85㎡(25.7평).

이 수치에 대해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신당동 사저 규모를 참고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85㎡의 아파트는 아이 둘이 각자 공부방을 가질 수 있는 황홀한 크기였다.

하지만 '하늘'과 '바다'처럼 넓으면 좋은 줄 알았던 것도 잠시…. 대출 받아 산 집값이 떨어지면서 이제 '하늘'을 원망하는 세상이 돼버렸다.

▶좋은 꿈꾸고, 밥 잘 먹고, 일터로 나가는데 아파트 공고를 보면서 김이 샜다. 공고판에 붙은 '4분기 예산대비 집행실적'은 돈에서 시작해 돈으로 끝나고 있었다.

일반관리비 3억 5340만원, 경비비 5억 7060만원, 청소비 1억 4800만원, 소독비 1616만원, 승강기 유지비 5571만원, 가스비 19억 5428만원, 수선유지비 3741만원, 위탁수수료 1077만원, 장기수선 충당금 3억 170만원, 생활폐기물 3045만원, 보험료 1098만원, 대표회의 운영비 494만원, 전기료 7억 3803만원, TV수신료 4076만원, 수도료 2억 7699만원, 유선방송 시청료 6979만원, 합계 46억 2100만원…. 1년이면 184억이다.

순간 '뭐, 이딴 놈들이 있어'라는 한숨이 새어나왔다. 눈 뜨고 코 베일만한 내역이 빼곡했기 때문이다. 이 돈이면 웬만한 중소기업 하나쯤 운영해도 될 돈 아닌가.

▶1998년, 전국 2000여 아파트단지에서 불법행위가 탄로나 6000명이 '콩밥'을 먹었다. 하지만 지금인들 '콩밥'먹을 인간들이 없을까. 요즘에도 입주자 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 용역업체가 결탁해 재활용품 판매비와 장기수선충당금을 빼돌리거나 공사장 소음·진동 피해보상비를 받아서 몰래 유용하다 적발되고 있다.

공사비 부풀려 차액 먹기, 직원 퇴직급여 충당금 부당 수령, 회계서류 조작을 통한 간이영수증 발행, 부적절한 잡수입 운용, 회식·간식비 활용 등이 그것이다. 우리 삶터 옆에 '콩밥' 먹는 '도둑고양이'가 서식한다니 두려운 일이다.

▶국민 10명 중 6명은 아파트에 산다. 관리비만 연간 12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일일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람은 없다. 평생 집 한 칸 얻기 위해 죽을 둥 살 둥 발버둥 치다가, 네 식구 발 뻗고 잘만한 둥지를 얻었을 땐 이미 인생의 절정기는 가고 없다. 그런데 이마저도 도둑놈들에게 떼이고 있다. 아, 아파트는 아프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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