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럼] 김대식 충남도교육청 경리담당 사무관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인정하는 등 한일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이 시점에, 일부 극우분자들의 행동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안일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어, 왜곡된 식민사관을 근거로 쓰인 역사를 조금이나마 바로 잡고자 한다.

우선 이조(李朝)라 부르지 말자. 이조는 이 씨 조선을 줄여 이르는 말로, 일제가 조선의 격을 떨어뜨리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다. 곧 일본의 왕(王)은 천황이고 조선은 이 씨의 성을 가진 사람이 다스리는 변방의 나라라는 뜻이니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조선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8년간 찬란한 문화를 간직한 국가다. 세계 역사에 이렇게 길게 유지된 왕조는 흔치 않다. 이 시기에 써진 조선왕조실록은 그 규모의 방대함이 다른 어떤 나라의 정사서와 비교해도 군계일학이다. 또 민족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우리말, 즉 한글이 창제되기도 했다. 과연 이 지구상에 자기민족의 독특한 국어를 가진 나라가 몇 나라나 될까.

민비(閔妃)라 부르지 말자. 황제의 비(妃)는 황후(皇后)다. 고종황제의 정비인 명성황후를 민비라고 부르는 것은 조선의 황실 칭호를 격하시키려는 일제의 의도다. 다행히 지금의 역사교과서에는 명성황후로 정립돼 있다. 칠거지악(七去之惡)이란 악습이 있어서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전형이자 극치였다.

그 시대에는 지구 어느 곳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남녀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구에서도 20세기에 들어서야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조선 사회만 여성을 옥죄는 제도와 문화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하고 있다. 칠거지악이라는 악습이 존재했던 것은 인정하지만, 칠거지악에 해당되어 내침을 당하게 되더라도 구원 받을 수 있는 삼불거(三不去)란 장치가 있었다.

이러한 도의적 제도로 미루어볼 때 칠거지악은 남존여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도의사회를 위해 여성이 지켜야 할 도리를 강조한 것이다.

일제의 식민사관에 의해 조선이 당쟁과 사대사상으로 얼룩진 부정적인 나라라는 역사인식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일제는 조선사를 이용해 망국의 책임을 침략자인 일본이 아니라 조선인에게 돌리려 당파성론을 유포시켰다.

일제는 조선 시대의 정당들을 '주의를 가지고 서로 존재하는 공당(公堂)이 아니라 이해관계에서 서로를 배제하는 사당(私黨)'으로 규정하고 이를 한국인의 특성이라 간주했다. 따라서 정치가 이렇게 분열과 대립을 거듭하는 속에서 사회발전은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으며, 왕조가 이민족에게 국권을 잃은 것도 정치의 이런 난맥으로 봐서 당연하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조선 침략을 정당화 했다.

붕당은 지금으로 말하면 정당정치인데, 이 붕당이 서로 다투면서 발전해나가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정치론들이 입안되고, 거기서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파생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국가는 발전하기 마련이다.

즉, 붕당 정치는 현대의 의회 정치로 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조선 시대에 붕당 정치가 대단히 발전했다는 것은 당파가 존재하지 않았던 일본보다 조선 정치가 그만큼 선진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조선의 망국의 이유로 붕당정치를 내세우는 것은 식민 통치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일제의 비열한 술책이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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