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 칼럼] 정진철 대전복지재단 대표이사

1990년 필자가 평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영국에 유학 갔을 때의 일이다. 그 때만 해도 한국인들은 영국에 입국하면 외국인등록을 해야 했다. 경찰서에 가서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여권을 맡기면 수일후 외국인등록증이 나온다. 필자도 이를 신청한 뒤 약속된 금요일에 경찰서를 찾았다.

그런데 그만 업무시간이 지난 후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은 단 5분. 업무시간이 끝난 경찰서에는 창구부터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고, 급한 용무가 있는 사람은 옆의 벨을 누르라고 쓰여 있었다. 필자는 당연스럽게 벨을 눌렀다. 잠시 후 블라인드가 올려지고 한 경찰관이 나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외국인등록증을 찾으러 왔다고 했다. 그 경찰관은 몇 안 되는 여권을 뒤적이더니 내 것을 찾아내고는 나에게 보여주며 이것이냐고 물었다. 필자가 맞다고 대답하자, 그 경찰관은 월요일 업무시간에 오라고 하고는 블라인드를 내려버렸다.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닌가. 그저 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을 월요일에 다시 오라니. 속으로는 화도 났지만 방법은 없었다. 결국 월요일에 다시 경찰서를 방문해 외국인등록증을 찾았다.

필자가 다시 공직에 복귀해 그 때 그 일을 떠올리며, 그 경찰관의 행동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나 국민이나 각자 서로의 할 일이 있다. 늦은 것은 필자 본인이지 경찰관은 아니다. 결국 내 행위에 대한 책임도 당연히 내 몫이어야 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공무원이 국민에게 무한봉사를 해야 하며, 그것이 미덕인 것처럼 포장된다. 할 수만 있다면 소위 공복이라는 공무원으로선 당연한 일로 여져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다보면 때로는 더 중요한 일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처음 공무원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고속도로나 철도변의 농지 주인들은 농사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았다. 모내기부터 벼베기까지 모두 공무원들이 나와 해줬기 때문이다. 대외적인 홍보효과를 노린 정부에서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면 인구 이동이 많은 고속도로나 철도변부터 시작했다. 정부에서는 매일 모내기 실적과 벼베기 실적 등을 직접 챙겼다.

한번은 직원들과 보리베기를 나갔었다. 공무원들이 오전 내내 보리를 베고, 점심때가 돼 철수하려 하자 옆에서 공무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땅주인이 "아니 그것만 하고 갈 거면 뭐 하러 와서 번거롭게 하느냐"고 호통쳤다. 참으로 기가 막혔다. 정부는 수십년 간 이런 식으로 국민과의 관계를 맺어 왔다. 이젠 이것이 우리나라의 고유한 하나의 행정문화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종종 선진국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우리도 2만달러 국민소득과 인구 5000만명 이상의 소위 2050클럽에 가입한 나라가 됐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수시로 우리나라를 인용한다. 외견상 우리는 선진국의 외양을 모두 갖췄다.

복잡하고 다양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어차피 모든 것을 혼자서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까. 결국은 대부분을 남에게 의존하고 있다. 이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각각 맡은 역할이 있고, 그 역할들을 충실히 수행해 이것이 모여 전체 사회가 작동하게 된다.

현대 사회는 종래의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를 중시한다. 이에 따라 통치(government)라는 단어 대신 협치(governance)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통치시대에는 통치하는 자와 통치 받는 자가 구분이 됐지만 협치의 시대에는 모두가 결정하는 자이자 모두가 그 결정에 영향을 받는 자이다. 국민 모두가 각자 맡은 바 분야에서 모두 갑으로 생각하고, 나에게 주어진 몫을 다 하는 것이 우리가 그리는 진정한 민주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