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김일순 사회부 차장

1896년 창업한 두산은 올해로 117년을 맞아 국내 100대 기업 중 최장수 그룹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오랜 세월 부침을 겪으며 숱한 대내외적인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사회적 변화의 흐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면서 남다른 경쟁력과 빼어난 경영수완으로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두산은 기존의 틀을 탈피하는 발상의 전환을 통한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한 성공적인 리모델링 사례로도 유명하다. 그룹의 핵심 돈줄인 OB맥주 등 식음료 사업을 매각하고 한국중공업과 미국의 대형 건설장비 업체 등을 인수해 중공업 위주로 사업체제를 재편, 전체 매출의 60%를 외국에서 거두는 글로벌 인프라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두산이 최근 ‘서열식 인사고과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새로운 인사평가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해서 관심을 모았다. 인사고과 때 점수를 매겨 석차 순으로 평가하던 방식을 없애고 개인별 특성을 고려한 역량 육성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즉, 고과점수를 매기는 대신 인재 양성과 공정성, 열린 소통, 투명성, 혁신 마인드, 근성, 사업적 통찰력 등을 기준으로 45개 항목으로 나눠 각 임직원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육성계획을 수립하고, 역량 및 상위 역할 수행 가능 여부에 따라 승진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연례적으로 대규모 정기승진 인사 결과를 대내외에 발표하던 관행도 없앴다. 업무적으로 필요한 대상에게만 알려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두산의 새로운 인사 시스템은 박용만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인재를 중요시하는 메시지를 담은 광고로 호평을 받은 ‘사람이 미래다’ 시리즈 제작에 관여했고, 그룹 총수로서는 드물게 채용설명회에 직접 나설 정도로 사람 중심의 경영철학이 확고하다. 그는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미 스타다. 신입 직원을 ‘귀요미’로 자신의 부인을 ‘뷘 마마’로 표현하며 익살스럽고 재치있는 글로 인터넷에 어록까지 나돌 정도다. 단순한 말장난에 그치지 않고 젊은층에게 따뜻한 위로와 힘을 불어 넣어주는 메시지로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박 회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정한 인사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다. 그는 “동일한 역량을 가진 두 사람을 놓고 승진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승진한 사람은 당당한 리더의 역할을 할 수 없고, 승진에서 누락한 사람은 진급한 동료를 격려하지 못하게 된다. 또 이 두 사람의 성패를 바라보는 동료들은 어느 덕목에 의해서 승진이 결정되는지 불분명해 혼란을 야기하고 결국에는 한 번의 잘못된 승진 결정이 조직 구성원 전체를 미궁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해마다 7월에는 지자체와 각 기관 등에서 정기인사가 단행된다. 또 인사 결과를 놓고 어김없이 공정성 논란과 갖가지 풍문이 나도는 등 ‘인사 후폭풍’도 여전하다. 인사 결과의 정당성에 대한 평가는 누구보다 조직원 스스로 가장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사가 곧 만사(萬事)’임을 새감 일깨운다. 두산이 시도한 새로운 인사 시스템의 안착과 성공 여부는 당장 확인할 수 없지만, 국내 최고(最古) 기업으로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며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두산의 핵심 경영철학이 사람 중심의 공정한 인사원칙 세우기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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