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이석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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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와 관련하여 "침략이라고 하는 정의는 학계(學界)에서나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며 그것은 국가 간의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라고 했다. 중국은 따져 보아야할 것이지만 조선은 침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은 합의에 의한 병합이라고 억지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일본 내 우익 세력들도 무라야마 담화를 자학(自虐)사관이라 비판한다.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에 나타 있는 714회에 이르는 침략행위를 짚어보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우리나라 것을 훔치고 빼앗아 달아난 후에 그 행위에 대해 숱한 왜곡과 조작을 일삼아 왔다. 그들의 멘탈은 왜곡과 조작 그리고 망언을 일삼는 DNA로 구성 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명나라를 칠 테니 땅을 빌려 달라더니 1910년 합일병합 때는 두 나라를 천황폐하 아래 하나로 합치자고 협박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風神秀吉)는 임진왜란을 일으키며 진구황후 전설을 끌어다 붙여 정당화하였다. 한일병합에 대해 일본인들은 일본 본래의 세력권에 돌아 왔다며 진구황후를 끌어다 잇대어 침략을 합리화하였다.

일본서기는 680년경에 쓰기 시작하여 720년에 완성된 일본 역사책이다. 이 책에 200년에 진구황후가 오진 천황을 임신한 채로 한반도에 출병하여 신라를 정벌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신라왕은 일본군이 도착하자 스스로 결박하고 항복하였고 말과 마구를 바치겠다고 맹세하였다고 한다. 이 때 진구황후는 아기가 나오려고 하자 배에 돌을 대어 출산을 늦추며 일본에 돌아가 오진 천황을 낳았다는 황당한 기록이다. 진구황후(神功皇后)가 신라를 정복한 사건을 백제의 연대기로 따져보면 약 120년의 차이가 생겨 역사적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자 일본 학자들은 이주갑인상(二周甲引上), 즉 120년을 올리는 공개적인 역사년도 조작을 단행한다. 일본서기의 기술이 이치에 맞지 않고 200년간 정복했다는 신라지역에서 증거 유물들이 전혀 발견되지 않으므로 삼한 정벌설을 후세의 조작으로 인정하는 일본 사학자들이 많이 늘어났다.

김성호 박사는 기원전 4세기 말까지 한반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외에 제4의 왕조가 존재했는데, 이 나라는 바로 온조의 형인 비류가 건국한 "비류백제" 로 비류는 중국 사료에서 백제를 건국한 "구태" 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광개토대왕비문 396년에 ‘六年丙申王躬率水軍討利殘國’(6년 병신년에 왕이 친히 수군을 이끌고 리잔국을 토멸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비문에 백잔(百殘)과 리잔(利殘)이 등장하는데'백잔국'은 단지 전쟁에 졌을 뿐이만 '리잔국'은 토멸당하여 멸망했다. 이는 "리잔국" 과 "백잔국" 은 서로 다른 나라인 비류백제와 온조백제의 존재를 의미한다.

'광개토왕의 비류백제 토멸'후 영락은 이어 온조백제도 격파하니 백제왕은 "영원히 노객(奴客)이 되겠다" 며 항복했다. 비류의 세력은 일본으로 건너가 처음에는 규슈에 상륙했다가 동정(東征)을 통해 기나이 지역을?정복하고, 마침내 오늘날의 일본의?모태가 되는 '천황국가' 를 건국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김성호 박사의 "비류백제와 일본국가 기원설"이다. 아키히토(明仁)천황은 '모계백제설母系百濟說'을 주장하여 파문을 일으킨 적도 있다. 어쩌든지 일본은 백제가 국가 꼴을 만들어준 것만은 확실하다 할 것이다.

1905년 일본은 러일전쟁에 이겼으나 전쟁비용 때문에 경제가 악화되어 소요가 자주 일자여론 환기를 위해 한국의 국권 찬탈을 기획했던 것이다. 현재 일본의 국가 채무는 아베노믹스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상태다. 그들은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일본의 신군국주의를 경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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