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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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甲子士禍(17)


"전하, 신은 옹주마마와 함께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춘소일각(春宵一刻)이 치천금(値千金)이라 하오니 합환주를 나누신 후에 일찌감치 촛불을 물리고 온유향(溫柔香)에 취하시어 우화등선(羽化登仙)의 단꿈을 꾸시오소서."

임숭재는 휘숙옹주와 함께 왕에게 술을 한 잔씩 올리고 나서 서로 눈짓을 하며 함께 일어났다.

왕은 물러가는 그들 내외를 말리지 않았다.

방문이 닫히고 임씨와 단둘이 남게 되자 왕은 술잔부터 집어 들었다.

"이리 가까이 와서 술을 부어라."

"예, 황공하옵니다."

임씨는 스스럼없이 주안상 머리로 다가와 술병을 기울여 조심스럽게 왕의 잔을 채웠다.

왕은 잔을 내려놓고 슬그머니 임씨의 손을 잡았다.

"어머!"

임씨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일처럼 당황하는 체하였다.

그러나 왕은 여인을 많이 다루어 본 경험으로 임씨가 앙큼하고 뻔뻔스런 계집이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사홍이 이렇게 어여쁜 딸을 둔 줄 정말 몰랐구나. 내 동궁 시절에 매부 풍원위와 사귀면서 몰래 왕래하였는데 어찌 그때 본 기억이 없을꼬?"

왕은 임씨의 손을 놓아주지 않고 그녀의 미모에 홀린 듯 칭찬의 말을 지껄였다.

"전하께서 신첩의 집에 왕래하시던 동궁 시절이라면 십여년 전의 일이오니 그때 신첩은 열 살도 못된 어린애였을 것이옵니다."

임씨는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였다.

"지금 몇 살인고?"'

"갓 스물이옵니다."

"그러니 내가 옛날에 보았더라도 어린애였겠군."

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임씨는 왕이 술잔을 비우기가 바쁘게 그에게 잡힌 채 가만있던 손을 얼른 뽑아 다시 술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아비가 내게 시침(侍寢)하라 이르더냐?"

"예, 진즉에 아비가 그런 말을 하였고, 오라버니와 올케 언니도 같은 말을 하여 전하께서 몰래 야행(夜行)을 하실 날만 학수고대하였사옵니다. 오늘밤 이같이 지척에서 용안을 우러러 뵙고 시침(侍寢)하게 되오니 영광스럽고 꿈만 같사옵니다."

부자와 남매가 비루하고 추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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