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용암동 모텔 화재때 사다리차 설치 못해
엉킨 전선·주차차량 공간확보 안돼 … 정비 시급
인명구조 등 지장 … 전선 지중화 사업 미미 수준

“주차차량과 엉킨 전선 때문에 사다리차를 펴지 못한다는 게 말이 돼요? 큰 불이었다면 참사로 이어졌을 것 아닌가요?”(주민 박모 씨)

“차량 이동이 많은데다 고압전선 때문에 사다리차 설치가 불가능했어요. 건물 내 화재가 아니라 천만다행이었습니다.”(소방대원 김모 씨)

최근 충북 청주시 용암동에서 발생한 모텔 화재와 관련, 도심 곳곳에 설치된 전선 및 전신주가 화재발생 시에는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소방당국이 사다리차를 이용해 인명 구조에 나서려 해도 거미줄처럼 엉킨 전선 때문에 사다리를 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충북도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고가사다리차는 폭 4m 진입로와 함께 주차공간(4×12m)이 확보돼야 사용할 수 있다. 화재현장에 조경시설이나 도로변 고압전선도 없어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둘 다 마땅치 않다.

지난 15일 오후 8시10분경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의 한 모텔 지하에서 불이 났다. 이 불은 지하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1t 화물차에서 시작돼 옆에 있던 승용차만 태우고 건물 내부로는 옮겨 붙지 않았다. 불이 나자 투숙객 15명은 5층 옥상으로 긴급 대피해 구조를 기다렸다.

소방당국은 사다리차를 이용해 투숙객들을 구조하려 했으나 엉킨 전선과 빼곡히 주차된 차량 탓에 사다리차를 펴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 진압팀장 A 씨는 “유독가스가 계단을 타고 위쪽으로 올라가는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고가사다리를 이용해 대피하는 방안이 최선이었다”며 “공간확보가 안 된데다 전선 때문에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구조대는 곧 바로 건물 안으로 진입해 옥상에 있는 투숙객들에게 산소마스크를 착용시킨 후 일일이 계단을 통해 대피시켰다. 이 과정에서 1~2명이 가스흡입을 호소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A 팀장은 "전선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고가사다리를 설치했다면 정전이나 2차 화재 등 더 큰 사고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며 “현장 상황을 충분히 검토한 후 대원들의 직접 구조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전선과 전신주 등이 화재진압과 인명구조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청주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가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전선을 지하에 매설하는 '전선 지중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전신주와 고압전선 설치는 소방안전과 별개라는 점도 문제다.

한국전력공사는 전기사용 신청이 들어오면 차량통행과 건물 진·출입 지장 여부 등을 판단해 전신주 위치를 결정, 설치한다. 소방사다리차 설치여부는 고려사항이 아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소방서 한 관계자는 “건물과 건물 사이, 대로변에 엉켜 있는 전선 등으로 인명구조가 어려워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관계 당국이 하루빨리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성진 기자 seongjin98@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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