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맞벌이에 가정 충실 못해, 동기부여로 스스로 크게 도와, 대신 돌봐주신 시어머니 늘 감사”, 어머니·아내로써 힘들었던 점은, “학교도 찾아가지 못한 불량 엄마

▲ 68년 역사상 첫 여성 치안정감에 오른 이금형 경찰대학장(하단 가운데)이 경찰대학 재학생들과 생일파티를 하고 있다. 경찰대학교 제공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어머니다. 세 딸의 어머니로, 사업가 남편의 아내로, 며느리로 가정을 지키며 68년 경찰 역사상 첫 여성 치안정감에 오른 이금형 경찰대학장을 지난 8일 경기도 용인 경찰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달 2일 학장에 취임했다. ‘엄마 리더십’으로 경찰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이 학장의 라이프 스토리를 소개한다.

-단란한 가족에 대해 많이 알려져 있다. 가족의 최근 근황은.

“남편인 이인균 전 신세계그룹 부사장은 퇴직 후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지방대(청주대) 출신으로 대기업 부사장까지 승진한 것은 성실성의 반증이라 생각한다. 첫째 딸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을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현재 중앙부처 사무관으로 재직하고 있다.(최연소 합격자로 화제가 됐다) 둘째도 카이스트 학부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친 후 미국 하버드 의과학센터 연구원으로 있다. 셋째는 연세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경희대 치의학전문대학원 4학년에 재학 중이다. 막내가 치과의사를 선택한 것은 아빠의 치아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 계기가 됐다. 남편이 대기업에서 열심히 일하며 치아가 상해 임플란트를 했다.”

-바쁜 경찰생활을 하면서 자녀를 소위 ‘엄친딸’로 키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비결이 궁금하다.

“엄마 역할을 잘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다. 경찰 업무상 가정에 충실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남편은 샐러리맨이고 저는 직장의 말단으로 형편이 여유롭지 않았다. 영재교육이니 선행학습이니 하는 과외공부를 시키지 못했다. 나중에(중·고교 시절) 보습학원 정도 보냈다. 딸들은 주경야독한 저의 모습을 지켜보며 열심히 공부한 것 같다. (이 학장은 고교 졸업 후 경찰에 입문했고, 직장생활하며 방송통신대를 졸업하고 석사와 박사과정까지 계속 공부했다.) 매주 일요일에는 아이들의 일주일치 일기장과 독후감을 확인하며 내용이 충실했을 때는 1000원씩 상금 형식의 용돈을 줬다. 학교 선생님이 이런 내용을 아시고 아이를 칭찬해 주며 동기부여가 돼 아이들도 학교생활을 더 열심히 한 것 같다. 대화도 많이 나누려고 했다. 딸들에게 한 가지 강조한 것은 ‘여자라고 뒤로 빠지거나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 여자도 능력 있으면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시대다. 열심히 공부하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제 인생관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어머님의 역할이 컸다. 외아들인 남편에 이어 손녀들에 대한 사랑이 크셨다. 저를 대신해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방과 후 숙제 등을 책임지셨다. 시어머니께 항상 감사드린다.”

-직장생활하면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역시 육아와 가사문제였다. 아이들이 아플 때 병원에 같이 가지 못한 경우도 많았고, 학교 준비물을 챙겨주지도 못했다. 한 번은 아이가 학교 칠판 글씨가 안 보인다 해서 안과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시력검사 후 당장 안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집 엄마들은 이미 입학 전 자녀들의 시력을 측정하고 안경을 착용해야할 경우 준비해 학교를 보냈다. 불량엄마라 해도 할 말이 없었다.(웃음) 아이들의 담임선생님이 학교를 방문하라는 연락을 해왔을 때도 못갈 때가 많아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해 1년에 한 번은 학부모회의에 참석하고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주부로서 가사도 큰 문제였다. 학업을 병행했기 때문에 설거지, 다림질을 하면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강의내용을 녹음테이프로 들으며 공부했다. 같은 내용을 10번 정도 반복해 들었다.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됐다. 자투리 시간 활용은 제 아이들의 학습태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68년 경찰 역사상 첫 여성 치안정감이다. 순경으로 시작해 현재 위치까지 승진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아울러 경찰입문 배경도 궁금하다.

“승진만을 목표로 일을 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고 성과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해야 할 업무에 대해서는 절대 주저하지 않았다. 근성 있게 일했고 피해자의 일을 저 자신의 일처럼 생각했다. 업무에서 엄마 입장이 돼 피해자나 민원인을 가족으로 생각해 일하다보니 내 일처럼 느껴 더 열심히 일했다. 사회에서 모든 역할은 엄마 역할의 확장(연장선)이다. 미국 민주당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는 네 아이의 어머니이면서 왕성한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공직자가 업무를 나의 일, 내 가족의 일이라 생각하면 우리나라가 더 발전할 것이라 확신한다. 경찰업무 중 과학수사를 중요시 했다. 몽타주 요원으로 선발되며 수사국 내 과학수사과에서 오래 근무했는데 당시 과학수사 업무는 소외된 사각지대였다. 과학수사가 발전하면 국민의 신뢰를 얻고 (경찰의 최대 이슈인) 수사권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조직 내에서는 강력과나 형사과만 중요하게 생각해 저는 오기와 근성으로 과학수사에 전념했다. 이어 불모지였던 여성·청소년 업무를 맡았다. 여성·청소년과를 만들고 초대 여성실장도 지냈다.

당시 여청과를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주변 경찰직원들에게 지휘관이 되려면 여성과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홍보했다. 업무초기에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는 피해로 보지 않는 풍토였고, 이로 인해 피해자는 기가 막히고 살 수 없는 실정이었다. 이런 피해자를 수없이 접하면서 여자로서, 딸로서, 어머니로서 그분들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하며 그 분야에 집중했다. 피해자의 아픔을 빨리 해결하기 위해 토·일요일에도 출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때 연락했던 실무 공무원들이 저의 진정성을 알고 많이 도와줬다. 그분들이 이제는 각 부처의 중요 위치에 올랐다. 한편으로 남성문화가 강했던 경찰조직에 적응을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성장과정이 도움이 됐다. 저는 5남1녀 중 유일한 딸로 오빠 두 분과 남동생 셋 사이에서 크며 남자들과의 생활에 익숙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지가 암 투병으로 고생하셨다. 그러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이후 하시던 사업도 잘 안됐다. 고3때 돌아가셨는데 저에게 경찰 제복이 멋있다며 경찰에 대한 동경심을 갖게 하셨다. 결정적으로 경찰 간부였던 삼촌이 여경도 앞으로 인정받고 보람된 일을 할 것이라고 권유해 입문했다.”

-진천서장, 마포서장, 광주지방경찰청장 등 경찰행정 최일선에서 일했다. 스스로 어떤 지휘관이라 생각하는지.

“경정, 총경 때는 직원들을 힘들게 한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조두순 사건 등 아동 성폭력 사건이 터지며 여성, 청소년문제에 주력했다. 인원과 활동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전례가 드문 신설업무를 추진하다 보니 듣게 된 불만이다. 구성원도 훈련된 직원이 배치된 것이 아니라 근무처를 본청으로 가기위한 중간다리로 생각하는 직원들이 오거나 초보자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서에 여성계를 만들자 생활안전 등 다른 부서에서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광주지방경찰청은 2007년 7월 개청해 제가 6대 청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3년 6개월 간 청장이 중도 낙마하고 직원사고도 많았다. 부임해서 100일간은 직원들과 호흡을 맞추는 기간이라 생각해 진정성을 갖고 소통과 화합에 주력했다.

꼭 추진해야 할 업무는 사내 통신망에 5~6장 정도 장문의 편지를 올려 설득했다. 직원과의 신뢰형성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특히 직원의 승진과 포상에 공정성을 확보하려 했고, 특진승진 기준이 본청에서 하달되면 사내통신망에 공개하고 직원들의 의견도 수렴했다. 매주 수요일 오전에는 전날 야간근무자들과 함께 해장국으로 식사하며 애로사항을 경청했다. 현장 간담회도 많이 갖고 직원들이 제안한 의견을 정책에 반영했다. 돈 안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이런 노력의 결과 클린하다는 이미지가 형성되고 소통과 화합이 기반 돼 재직기간 18개월을 매끄럽게 보냈다. 광주 직원들이 열심히 해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한다.”

-4월 경찰대학장에 취임했다. 교육책임자로서 교육관련 계획이 궁금하다.

“경찰대는 명문대 중 명문대 인데 그동안 엘리트 간부양성에만 주력한 면이 있다. 경찰대는 특수대학으로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현장의 간부로 실전에 바로 투입된다. 이들을 치안전문가로 육성하기 위해 기존 커리큘럼을 유지하면서 실습중심의 교육을 실시하려 한다. 이를 위해 신고자에서 순찰자, 지구대, 경찰서, 지방청 지령실로 이어지는 신고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구현한 종합상황실을 학교 내에 만든다.

수갑부터 허리띠 등 모든 장비도 갖춰 실전에 강한 현장민생치안 전문가로 육성할 계획이다. 경찰청에 예산을 요청돼 이미 확보한 상태다. 아울러 기숙사 환경도 개선할 예정이다. 흰색 페인트로 일관된 학교 건물 외관을 하늘색 등 다양한 컬러로 도색할 계획이다. 생일을 맞은 학생에게는 매달 떡 케이크를 준비해 축하하고, 어머니의 마음으로 미역국도 준비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따뜻한 가슴의 경찰간부가 되길 기대한다. 피해 신고자를 가족처럼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다.”

대담·정리=서울 김홍민 기자 hmkima@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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