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길 소신 고집 '탱크 언론인'

? ?
?
? ?
?

"옳은 길이고 가야 할 길이라면 가야 한다고 봅니다. 실패를 해도 후회는 하지 않으니까요."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에서처럼 사람은 누구나 양쪽의 길을 갈 수 없기에 항상 선택을 강요받는다. 한국방송광고공사 남영진(49) 감사는 자신이 살아온 길에 대해 '잘했다'라는 평가 대신에 '후회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고 설명한다. 영동군 황간면 마산리 42번지가 고향인 남 감사는 기자협회장을 역임하는 등 20여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에는 노무현 후보 진영에서 '언론특보'를 맡아 전국 언론사를 누비며 '설득과 당위성'을 설파하는 역할을 했다. 노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고 남 감사는 청와대 대신 언론인의 전문성을 살려 한국방송광고공사 감사일을 맡게 됐다. 재미있는 일은 남 감사는 현재 서울 프레스센터 17층에서 근무 중인데 과거에 일했던 기자협회, 미디어 오늘 사무실도 같은 건물 아래층이다. 같은 건물에서 다른 직종으로 세번째 근무 중이니 프레스 센터와의 인연이 보통이 아닌 셈이다.

◆ 내 취미는 천렵 = 남 감사는 고향에 대한 기억이 뚜렷하다. 황간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진학했지만 초등학교 시절 '낚시질'은 평생 자신의 취미가 됐다. "일년에 몇 번은 고향에 갑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해머질을 배워 '해머로 돌을 때리는 매질'을 했지요. 물속에 있는 돌에 매질을 하면 그 아래 있는 고기들이 잠깐 기절하거든요. 하하. 3학년 때부터는 작살질도 배워서 '졸고 있는' 메기를 부지런히 잡기도 했지요."

"포털사이트 등에 가입할 때 취미란에 '천렵'이라고 쓰지요. 아마 취미를 그렇게 적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하하."

◆ 금관의 예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 남 감사의 첫 직장은 서울 명동에 있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다. 남 감사가 1979년 근무했던 유네스코는 유엔의 산하 기구로 당시 유엔에 가입 안된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기구였다. "1970년대 초반 전국적 조직인 가톨릭학생회총연합이라고 있었는데 당시 김지하('오적'을 지은 저항시인) 형이 '금관의 예수'라는 저항연극을 전국적으로 공연했어요. 반응이 좋아서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앙코르공연을 했는데 남산 사람들(과거 중앙정보부가 남산에 있어 남산은 정보부를 가리키는 말)이 '뭔가 하고' 와서 본 모양이에요. 난리가 났지요. 하하. 지하 형은 잡혀 들어가고 총연합회는 해체됐어요. 그러다 1974년경에 다시 연합회가 출범했는데 제가 회장을 하게 됐고, 그 뒤 1978년인가 가톨릭 스페인세계대회가 열려 유럽에 가게 됐어요. 유럽을 여행하다 제네바에서 유엔본부에 근무한다는 한국사람을 만나게 됐는데 그 분이 '한국에서 고시할 생각하지 말고 국제기구에 들어가는 게 어떠냐'고 권해 첫 직장으로 유네스코에 근무하게 됐지요."

금관의 예수에서 시작된 남 감사의 직장생활은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그 발단이었다.

당시 문교부(교육부)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신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이 강연 프로그램 진행 중 유인물이 나돌았고, 남 감사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 노조위원장, 기자협회장 = 남 감사는 늦깎이로 신문사에 입사한 뒤 지난 90년 초반에 신문사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당시 회사와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던 남 감사는 그러나 노조위원장을 하면서 파업을 진행하는 등 강하게 회사를 압박했고, 회사는 남 감사를 지방으로 좌천시켰다. "노조위원장을 맡은 이상 그 임무에 충실했지요. 사실 내가 뭐 '강성'도 아니고. 하하. 하여간 회사에서 그 뒤에 대전·충청 취재본부장으로 발령내더라고요. 그 덕에 대전에서 1년 정도 근무했지요."

남 감사는 대전에 있으면서 기자협회장 출마를 결심한다. 언론노조 운동의 일환이었다고 한다.

1996년 기자협회장에 당선된 남 감사는 당시 사회주의권 기자협회와 교류 물꼬를 트고 당시에는 생소했던 환경 분야에도 눈을 돌렸다.

"당시 중국, 베트남, 이집트, 쿠바 등 하고 연결이 됐어요. 난생 처음 쿠바도 가 봤지요. 처음으로 기자협회가 환경프로그램에 눈을 돌려 울릉도 고추냉이 복원, 설악산 손다리 복원 등을 했지요."

◆ 청와대를 옮기면 어떨까요 = 남 감사는 지난 2001년 11월 언론생활을 접고 경선을 준비 중이던 노무현 대통령 후보 캠프에 합류한다.

당시 노 후보 지지율은 바닥을 기고 있었지만 남 감사는 노 후보의 당선이 우리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긋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남 감사는 기자협회장 시절부터 노 후보를 알았다고 한다. 특히 지난 2000년 부산에서 선거에 나선 노 후보를 만나기 위해 부산에 갔다가 '청와대 이전'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당시 남 감사는 노 후보가 부산에서 당선되면 2002년 대통령 후보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2000년 4월 총선에 출마한 노 후보를 만나기 위해 부산에 갔어요. 그날 제가 (당선이 되고 나서) '다음 대선에 나오신다면 청와대 옮기는 공약을 하면 어떨까요' 했더니 노 후보가 가만히 계시다가 '수도를 옮기면 어떨까요'라고 반문해 깜짝 놀랐지요."

남 감사는 노 후보 캠프에 합류한 첫날 "아직 우리나라 국운이 있다면 연말에 노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노 후보 캠프 특급참모였던 고향 후배 안희정씨는 남 감사에게 '정치 입문 하루 만에 정치인이 됐다'고 농을 건넸다고 한다. 남 감사는 "당시 노 후보가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길이 올바르다는 판단은 분명히 있었다"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 남영진 한국방송광고공사 감사는 >

▲1955년 충북 영동군 황간면 출생
▲황간초, 대광중·고, 고려대 졸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간사
▲국회의원 비서관, 한국일보 기자
▲한국일보 노조위원장
▲한국기자협회 회장
▲한국일보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미디어 오늘 사장 겸 편집인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상임고문 정무특보·언론특보
▲(현)한국방송광고공사 감사, 한국감사협의회 제8대 회장
▲저서 '북한의 실상과 주변정세', '안개 속의 조국'(번역서)


?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