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이들 포근히 감싸며 "제2인생 얻었죠"

"효임씨 덕분에 제2의 인생을 얻었어요. 평생 잊지 않을게요."
김효임(金孝姙·43)씨는 마리아(가명) 언니가 3개월 동안 누워 있던 이부자리를 개던 중 곱게 접어놓은 편지를 발견했다.
세상의 끝에서 아무 희망도 없었던 자신을 위해 부모보다도, 남편보다도 더 큰 사랑을 아무런 대가 없이 줘 너무 고맙다며 글자 하나 하나에 눈물을 담아 써 놓은 편지였다.
효임씨도 콧등이 시려 왔고 그동안의 많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쳤다.
대전 자모원에 마리아 언니가 처음 온 것은 2년 전 가을이었다.
어느 산부인과 의사의 부인인 마리아 언니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몸은 꼬챙이처럼 말라 있었다.
"식사는 하셔야죠."
그러나 1주일이 넘게 마리아 언니는 아무런 대답도, 식사도 하지 않은 채 누워만 있었다.
자모원의 자원봉사자인 효임씨는 마리아 언니가 남같지 않아 자기가 상담과 치료를 맡겠다고 나섰다.

효임씨 자신도 6년 전 자모원을 처음 찾았을 때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꾸준한 봉사활동과 기도를 통해 1년여 만에 우울증을 극복하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여성을 돕고 싶어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던 효임씨.

그러나 마리아 언니는 1년이면 100명 넘게 찾아오는 미혼모, 이혼을 고민하는 주부들 그리고 자신과는 조금 달랐다.

그녀의 우울증의 심연에는 낙태라는 생명 경시현상을 보면서 생긴 삶의 회의가 자리잡고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의 부인이다 보니 그녀는 하루에도 수차례 낙태를 하는 미혼모들을 봐 왔다. 남편도 산부인과의 경영상 낙태를 완전히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낙태시술은 계속됐고, 마리아 언니의 우울증은 심해져만 갔다.

'죽고 싶다'는 마음으로 1년여를 정신병원과, 기도원 등을 전전하던 그녀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온 곳이 대전 자모원이었고, 또 마지막 희망을 찾은 사람이 효임씨였다.

"오늘도 먹지 않으면 억지로 먹일 거에요."

2주일째 화장실 출입도 하지 않은 채 꼼짝하지 않고 있는 마리아 언니에게 보내는 최후통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무 반응도 없는 마리아 언니를 효임씨는 완력으로 일으켜 세워 입을 벌려 다 식어버린 미음을 한 수저 한 수저 떠넣었다.

그 일이 있은 지 3일 후, 조금씩 식사를 하기 시작한 마리아 언니는 1살 아래인 효임씨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효임씨는 마리아 언니가 치즈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빵 속의 치즈만 골라 입에 넣어 주기도 했다.

"언니, 이렇게 잘 먹을 걸 그동안은 왜 안먹었어요?"

"…미안해서, 미안해서 그랬어."

거의 한달 만에 말문이 트였다.

우울증이 가시고 있다는 징조였다. 효임씨에게 우울증이 가시는 속도를 빨리할 수 있었던 방법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 믿음을 회복하는 데는 대화가 가장 중요했다.

효임씨는 마리아 언니를 데리고 옆의 기도방에 가 기도를 통해 자신과 대화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

두달째에는 마리아 언니 혼자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두문불출하던 그녀가 방을 나와 햇살을 쬐고 같이 묵고 있는 20여명의 미혼모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마리아 언니는 만나는 미혼모마다 낙태가 얼마나 큰 죄악인지, 본인의 삶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정신을 얼마나 심하게 황폐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뼛속 깊은 애정을 담아 대화를 나눴다.

효임씨가 마리아 언니의 쾌유를 확인하게 된 것은 이제 막 겨울로 접어드는 11월, 자모원을 찾은 지 3개월째 되던 때였다.

"저기 아이들과 길 건너 돈가스 집에 가고 싶어, 효임아."

"돈가스요? 생전 외출은 안하시려던 분이 왠일이에요?"

"돈가스가 너무 먹고 싶어. 남편과 딸아이와도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돈가스는 그냥 돈가스가 아니었다.

삶의 생기를 되찾았다는 증거였고, 관계를 거부해 왔던 가족들과의 재회를 원하는 마리아 언니의 마음을 표현하는 매개체였다.

아쉽게도 남의 눈이 두려운 미혼모들과는 같이할 수 없었지만 혼자 돈가스를 씹으며 삶의 의욕을 되찾은 마리아 언니는 얼마 있지 않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녀를 거의 포기했던 남편과 딸아이가 마리아 언니를 데려가기 위해 자모원에 들렀다.

효임씨 자신은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정이어서일까,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고 부러웠다. 그리고 뿌듯했다.

마치 자신의 분신이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이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3년 1월 1일.

바쁘게 20명 분의 아침을 차리고 있던 효임씨에게 반가운 연하장이 도착했다.

"효임씨. 나예요."

글자에는 눈물 대신 생기가 담겨 있었다.

"아무리 희망이 없는 세상이라도,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이라도 희망은 믿는 자의 것이라는 걸 알게 해 준 효임씨를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정말 고마워요."

마리아 언니는 남편과 합의해 낙태를 하려고 산부인과를 찾아오는 미혼모들을 상담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남편도 낙태시술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낙태시술을 하지 않으니까 손님이 줄어 예전처럼 수입이 많지 않아 병원은 어렵지만 그들의 일상은 그 어느 때보다 기쁘고 평화롭다고 씌어 있었다.

효임씨의 가슴은 마리아 언니의 회복으로 더 큰 믿음으로 출렁이고 있다.

"많은 불우한 여성분들이 믿음을 얻으러 이 곳을 찾아요. 그리고 저도 그분들을 통해 새로운 믿음을 얻죠. 특히 마리아 언니와의 인연은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해 줬어요. 우리 모두 제2의 인생을 얻은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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