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남수 서대전세무서장

살림살이가 팍팍해서인지 주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경제에 관한 관심이 높다. 이자율이 오를지 내릴지에 관심을 두고 하다못해 밥상에 오를 채소 가격의 등락에도 민감한 실정이다. 일전에 언론지상에서도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 총생산의 추이를 분석하면서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서 머뭇거리고 있다는 아쉬움을 보도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일견 타당한 문제의 제기이긴 하지만 아쉬운 것은 국민소득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인 잣대로만 선진국진입 여부를 논하는 것은 다양한 사회현상의 한 단면만을 보는 근시안적 시각이라 생각한다. 경제적 능력이 한 나라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이긴 하지만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고 사는 문제 이외에도 중요한 것이 많다. 오히려 국민의 가치관이나 문화적 수준 등이 더욱 중요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이 아닌가 한다. 오일달러가 넘쳐나는 중동의 산유국을 우리가 선진국으로 보지 않는다. 재정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리스의 경우 경제적으로는 유럽에서 최일류는 아니지만 그 조상들이 이루어 놓은 철학적 정신세계와 문화적 유산으로 인해 선진국으로 부르는데 이의를 달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다.

복권에는 관심이 있어도 서점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연중 공연 한 번 가지 않는 상황이 문화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선진국 진입에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경제가 어려우면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이 문화지출 비용이다. 책을 사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이 대표적인 유형의 하나다.

얼굴 성형을 위해 성형외과가 문전성시이고 여권사진 마저 포토샵으로 많은 수정을 하여 출입국 과정에서 곤란을 겪을 정도로 외적인 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내면의 아름다운 성숙을 위한 문화적 비용은 아깝게 생각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필자도 책을 집필해 본 경험이 딱 한 번 있다. 책을 쓰려면 참으로 진지하고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책이란 저자의 내면세계를 활자화하여 대중과 교감하는 것이다.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살포시 속살을 드러낸 동백꽃잎처럼 독자들에게 수줍게 첫 선을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혼신의 노력을 다해 만들어진 책들을 구입하기 위해 단돈 2만원 내외의 돈을 지불하는데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지출삭감 리스트 1순위에 올린다는 것은 너무도 근시안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무실에는 함께 근무하는 200여명의 직원이 있다. 함께 근무하는 직원이 많다 보니 거의 매일 생일을 맞이하는 직원들이 있게 마련이다. 함께 축하를 하기 위해 생일을 맞이한 직원과 함께 차 한 잔 하면서 책을 한 권씩 선물하고 있다. 물론 햇병아리 등단 시인인 필자가 쓴 자작시도 한 편 곁들여서 책에다 붙여 주면서 말이다. 책을 선물한다는 것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 책을 받은 직원들 대부분이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을 보면 행복함을 느끼게 된다.

책을 받아든 직원 대다수는 생일을 기억해 준다는 것에 고마워하고 가족 이외의 사람에게서 생일 선물을 받은 것에 행복해 하며 책을 받아든 가슴엔 여유와 낭만이 자리잡을 것이다. 책을 선물하면서 바라는 소박한 심정은, 원하는 책을 고르기 위해 동네 서점에도 한 번 가보고 읽은 책을 돌려보면서 가족간의 대화가 싹트고 그로 인해 책을 가까이 하게 되는 선순환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아 전해 주고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생일을 축하하는 나만의 성스러운 의식으로 스토리가 있는 행복한 삶을 위해 시 한 수 음미하고,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함께 고민하거나, 여행길 나선 문학 청년이 되어 책에 대한 비평 한 마디를 안주 삼은 토론이 이어지는 날을 그려가며 나름의 삶에 젖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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