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수기 대상 리향미씨

새아빠트에 이사온후 아침이면 창문부터 열어제끼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도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순간 밝은 해살이 쏟아져들어왔다.

옛집에 있을적엔 창문 틈새로 흘러들어오는 올망졸망한 단층집들의 굴뚝 연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감히 창문을 열지 못했다.

지금 열어젖힌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아빠트 사이공간들에 심어져 있는 파아란 잔디들에선 벌써 봄물이 피여오르고 있었다.

문득 아빠가 계신다면 지금쯤 아침해살을 받으며 함께 바드민톤을 치다가 엄마의 아침 먹으라는 소리에 끌려 아쉬운 듯 아빠트계단을 오르시는 아빠의 뒷모습, 그 뒤를 쫓아 올라가는 나의 모습을 그려보느라니 저도 몰래 서글픈 웃음이 피여올랐다. 아, 이것이 아빠의 빈자리구나!

아빠가 한국으로 돈벌러 나가신지도 어언 몇년이 되었다.

아빠의 덕분에 얼마전 우리 집은 호화 아빠트에 이사해왔다.

커다란 거울이 걸려 있는 옷장, 서재엔 책이 꽉 들어차있고 그 곁엔 컴퓨터가 놓여져 있고 일부러 부탁하여 남방에서 부쳐온 사계절을 알리는 화분….

새집들이 하던 날 이칸저칸 기웃거리며 부러워하던 친척들은 아빠트가 좋다고 야단하는데 할머니가 "아무리 좋아도 네 아빠가 보이지 않으니 텅빈 것 같구나"라고 쓸쓸히 말씀하시는 바람에 모두들 숙연해졌다.

그때 나도 처음으로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아빠랑 큰아버지랑 장기를 두면서 법석 고으련만 그날은 큰아버지 혼자 담배만 뻑뻑 빨고 있었고 할머니도 예전 같으면 아빠의 고집에 못이겨 묵어가련만 그날은 기어이 막차에 떠나시겠다고 하셨다.

옛집에 살적에 할머니가 어쩌다 우리 집에 놀러오시면 아빠는 뜨끈뜨끈한 아래목에 할머니의 이부자리를 펴주시고 비좁은 방 때문에 아빠는 부엌널장판우에 담요를 깔고 누우셨다.

이젠 널직한 아빠트라 할머니는 쉴자리가 편해졌지만 되려 마음은 불편하신지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으며 기어이 떠나가셨다.

아빠의 빈자리는 우리 모두를 그리움에 빠지게 했다.

며칠전 해볕이 따스한 날을 골라 엄마는 옷장안의 옷을 꺼내 해볕쪼임을 시키고 다시 정리하여 옷장에 걸어놓았다.

아빠가 언제 돌아오실지도 모르면서 엄마는 아빠의 옷견지마다 먼지를 털고 옷에 묻은 실밥들을 하나하나 뜯어내고 어떤 옷은 곱게 다리미질까지 하여 다시 옷장안에 정연히 걸어놓는 것이였다.

가끔 엄마가 홀로 침실에서 서성거리며 멀거니 서있거나 아빠의 베개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면 아마 휑하니 뚫린 심정으로 아빠의 빈자리를 가슴 아프게 느끼고 계실거라는 생각이 든다.

"향미야, 빨리 아침 먹자."

엄마의 재촉에 못이겨 식탁에 마주 앉았지만 이 둥근 밥상도 한쪽켠은 비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빠의 자리였다.

옛집에 살적엔 아름다운 꽃무늬가 찍힌 앉은뱅이 밥상이였지만 빙 둘러앉아 엄마가 아침부터 기름내 풍기며 구운 물고기 한마리를 놓고 서로의 접시에 집어놓으면서 맛나는 아침상을 같이 하지 않았던가.

엄마가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아빠가 엄마의 앞치마 두르고 '요리사'가 되었고, 나는 '복무원'이 되었고 '지각생'이 된 엄마는 나와 아빠의 이마에 입맞춰주는 행복한 '벌'을 받아야 했다.

아빠한테는 기분이 좋을 때면 하얀 술잔에 술 한잔 따라 마시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요즘 아빠를 위해 준비한 수정같이 투명하고 이쁜 술잔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지만 술마시는 아빠의 모습은 볼 수 없다. 피여오르는 아빠 생각에 나는 아침을 거르고야 말았다.

나는 거실 한복판에 걸려있는 가족 사진을 바라보았다.

아빠가 한국가기전날 우리 세식구가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사진찍던 날 도무지 웃을 수 없는 나와 엄마한테 '김치-'하며 웃기시던 아빠였지만 서글픈 기색은 감추지 못했다.

지금 아빠는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시공현지에서 무거운 일을 한다는 아빠, 체중이 80㎏ 넘던 아빠였지만 지금은 살이 싹 빠졌을게다.

한국에서 얼마전에 돌아온 이웃집 아저씨처럼 쭈그러진 마른 대추같은 주름살이 얼굴에 늘지 않았을까.

이젠 돈을 그만 벌고 돌아오시라고 권고하면 "네가 고중다닐 돈, 류학보낼 돈 다 벌고 돌아갈게. 힘들어도 참어. 나의 보배 딸아!"라고 되려 걱정을 하시던 아빠였다.

우리가 곁에 없는 아빠의 가슴에도 빈자리가 뚫렸을게다.

다만 일로 그 빈자리를 메워갈 것이다.?

우리도 아빠의 빈자리를 그리움과 사랑으로 채워가련다.

서로가 헤어져 있지만 그 빈자리를 가족사랑으로 채워가고 있다.

아빠가 없는 빈자리 꼭 쪼각달같이 서러워 보이지만 언제나 모든 것이 둥글어질 그날이 꼭 돌아오고야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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