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으레 목례를 나누곤 했던 옆집 40대 부부. 어느 날 갑자기 이사를 가고 말았다. 아파트 층간 소음 분쟁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초등학교 2학년, 5학생 두 아들 녀석을 두었던 이들 부부는 비교적 순탄한 가정을 꾸려가는 듯했다.

다만 늘 마음 걸리는 게 있었다고 했다. 아래층에서 자꾸 소음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었다. "애들이 밤낮가리지 않고 꿍꽝거리면 되느냐"고 화를 내기 일쑤였다. 40대 부부는 소음방지용 매트를 깔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끝내 아래층 비위를 맞출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밤중에 아래층 주민이 흉기를 들고 위층에 난입하고야 말았다. "더 이상 참지 못한다. 모두 죽여 버리겠다." 아래층 주민은 위층 이곳저곳을 휘저으면서 한바탕 난투극을 벌였다. 자칫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40대 부부는 아무 대꾸도 못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그 아파트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온 가족이 함께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소음 스트레스 피해는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소음 발생경로로부터 측정방식, 해결방식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복합적인 요인들로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 간에 불편한 감정이 개입되면 살인, 폭력 등 극단적인 상황으로 쉽게 반전되고 마는 이유다. 어느 한쪽이 이를 피하려 해도 벗어날 수가 없다.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평생 씻을 수 없는 멍에를 지고 살아야 할 판이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층간 소음분쟁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2000년 이후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층간소음 분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당사자 간의 부적절한 대처방식이 이어지면 그 결과는 보나마나다. 과격한 형태의 2차 범행을 유발하는 환경도 사실은 이런 데서 찾을 수 있다.

대전시가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 해결에 나선 건 일단 옳다. 시민사회단체는 엊그제 시내 5곳에서 '아파트 공동문화 개선 캠페인'을 펼쳤다. 이 캠페인은 시내 모든 아파트 단지(700개)를 대상으로 오는 5월 말까지 계속된다. 주요 내용은 층간 소음 줄이기, 이웃과 소통하고 배려하기, 주차 질서 지키기, 서로 인사하기 등이다. 우리의 미풍양속인 공동체 문화가 붕괴되고 있다는 반성에서다.

향후 그 심각성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진단이 유력하다. 그러잖아도 우리 사회는 인구 저출산-고령화, 실직, 질병, 빈곤, 사회안전망 해체 등으로 우려할 만한 현실이 속출하곤 한다. 어떤 형태가 됐건 이웃과 단절된 사회는 행복한 사회라고 정의할 수 없다. 누구나 지역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참여하고 지역발전에 기여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아파트 공동체 문화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 아파트 관리를 주민중심으로 전환하고 상호 양보와 배려의 공동체의식 회복을 위한 커뮤니티 활성화가 포인트다. 아파트에서 무관심과 배타주의를 몰아내고 따스한 전통 이웃을 복원하려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모색돼 왔지만 지지부진한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 공동주택 인구 비율은 65%로 높은 편이다. 거주민 스스로를 인정하고 배려하고 소통하는 일이 중요하다. 층간 소음문제로 누군가 불편하다면 그 실체에 접근해서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는 일을 기피할 이유가 없다. 가령 소음의 실체 있었다면 이를 어떤 방식으로 저감시킬 건가. 그 길을 찾자는 것이다.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한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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