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면 어떤 처벌도","성공하면 장을 지지지"

▲ 세계 9번째로 전기통신연구소에서 개발한 전전자교환기 시험인증기 개통식
구소에 240억원을 지원하면 디지털전자교환기를 개발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데까지 해 보겠습니다."

1981년 9월 오 명 체신부 차관(현 과기부 장관)이 한국전기통신연구소(KETRI·현 ETRI)의 최순달 소장과 경상현 선임연구부장을 체신부로 불러들여 심각하게 물었다. 오 차관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최 소장의 표정엔 자신이 없었다.

"그 정도론 안됩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시도한 적이 없는데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앞으로 몇 백억원짜리 프로젝트도 가능하지만 실패하면 당분간 대형 프로젝트는 어려울 겁니다."

오 차관의 강력한 개발 의지를 전달받은 최 소장과 경 선임연구부장은 결과에 따라 어떤 위험이 기다린다 해도 선택의 길은 오직 프로젝트를 맡아 전력을 다하는 것밖에 없음을 직감했다.

"이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나면 다른 과학자들이 큰 프로젝트를 할 길을 막는 셈이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전을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겁니다."

"잘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 차관은 대답 대신 두 사람의 손을 꼬옥 잡았고 이렇게 당시로선 상상조차 어려웠던 '240억원'의 연구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5년에 걸친 장기 과제이지만 당시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 TDX-1 시범 인증기
군 장비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를 제외하면 당시 우리나라에서 10억원대 프로젝트도 구경하기 힘들었다. KETRI의 1981년도 연구개발비가 24억원이었고 그중 전자교환기 개발에 투입된 연구비가 1억 6000만원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단일 품목의? 전자교환기 개발에 매년 50억원을 쏟아붓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더구나 당시 우리나라 기술 수준으로 극소수 선진국에서 수출하고 있는 시분할전자교환기를 개발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오 차관은 시분할전자교환기 개발에 자신의 전부를 걸기로 했다.

우선 전기통신연구소의 과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전자교환기 개발이며 교환기 개발에 성공한다면 다른 분야의 연구 실적이 전혀 없더라도 연구소를 지원해 줄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환기 문제가 해결되면 전화 적체와 통화 품질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오 차관은 우리나라 연구원들의 잠재력을 믿고 있었다.

1981년 말에 240억원의 전자교환기 개발 프로젝트가 담긴 제5차 5개년 계획이 확정됐지만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인 최광수 장관은 최종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

전자교환기에 대해 문외한인 그로서는 주위의 의견을 들어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데 주위에 찬성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산업계 의견도 극히 부정적이었다. 이제 겨우 외국의 아날로그 전자교환기를 들여와 조립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술 수준으로 디지털 전자교환기 개발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었다.

최 장관은 1982년 3월 전자교환기 개발 문제에 대해 최종 결론을 내리기로 하고, 참모들을 거느리고 금성·삼성·OPC·대한통신 등 4개의 교환기 생산 업체를 순방했다. 동행한 참모들은 체신부의 오 명 차관과 이해욱 통신정책국장, 한국통신의 경상현 계획국장, 전기통신연구소의 최순달 소장, 양승택 선임연구부장 등으로 전자교환기 관련 전문가가 망라돼 있었다.

▲ 대용량 전전자교환기 시스템인 TDX-10.
최 장관은 그들과 함께 각 회사의 교환기 생산 현장을 시찰하는 한편 각 회사의 교환기 개발 현황에 대해 자세한 브리핑을 받았다.

참모들과 함께 인근의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최 장관은 참석자 개개인에게 "정말 시분할전자교환기를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고 대부분 참석자가 긍정적으로 대답하자 "그렇다면 시분할전자교환기 개발계획을 확정짓는다"고 선언했다.

또 전기통신연구소 간부들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시분할전자교환기를 개발해 내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하여 체신부에 제출하도록 명령했다.

'저희 연구소 연구원 일동은 최첨단 기술인 시분할전자교환기의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만약 개발에 실패할 경우 어떠한 처벌이라도 달게 받을 것을 서약합니다.'

연구소는 이 같은 서약서를 작성, 소장과 선임연구부장은 물론 관련 부서의 실장까지 연명으로 사인한 다음 그것을 체신부에 제출하는 한편 사본을 연구원들에게 회람시켜 연구개발 의지를 북돋웠다.

뒷날 한국통신의 TDX사업단장으로 임명되어 TDX 개발에 큰 공을 세운 서정욱씨가 그 서약서를 보고 "진짜 대단한 혈서를 썼구먼" 하고 감탄했는데 그 후 이 서약서를 'TDX 혈서'라 부르게 됐다.

TDX 교환기는 TDX 1X, TDX 1, TDX 1A, TDX 1B, TDX 10 등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새로운 버전(version)이 나올 때마다 이름이 조금씩 바뀌었던 것이다. 용량을 늘리고 우수한 성능을 추가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냈다.

TDX 1의 개발이 끝날 무렵 AXE 10, 5ESS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종이 완성된 제품으로 나오고 관련 문헌이 풍부하게 입수돼 국내에선 외국 기종의 장점을 충분히 검토 분석, TDX 10의 개발에 반영됐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까 남이 겪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필요가 없었죠. 남이 실수한 것, 남이 고생한 것은 피하고 그들이 잘한 것, 좋은 것만 가지고 따르다 보니 아주 융통성 있고 실속 있는 교환기가 된 거죠."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을 거쳐 현재 한국과학기술원(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초빙교수로 있는 경상현 박사의 말이다.

한국통신의 재래식 기술자들이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할 경우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는 반대에 부딪혔던 TDX의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연구원은 그것을 '신념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미국의 AT&T나 ITT의 제품을 갖다 놓아도 고장으로 쩔쩔매는데 국산품일 경우 오죽하겠느냐는 의견이 나옴에도 TDX 개발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통신기기 중 핵심이 되며 첨단 기술에 해당하는 전자교환기를 반드시 개발해 내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였다.

국가의 명운을 첨단 기술의 개발에 걸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워낙 강해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자교환기 개발사업에 착수할 수 있었고 240억원이란 예산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정부의 정책 의지에 전자통신연구소의 젊은 연구원들의 강렬한 개발 의지가 가미돼 TDX라는 개발의 꽃이 피어났다.

TDX 개발이 가져온 경제적 효과를 계수적으로 정확히 제시하기는 어렵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지난 2001년 집계 결과에 따르면 TDX 연구개발비로 1500억원을 투자했으며 내수로 인한 수입대체 효과 4조 3406억원, 수출 1조 458억원 등 모두 5조 3864억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했다. 게다가 전국 모든 통신시설을 우리 손으로 유지·운용·보수하는 효과까지 감안하면 그 파급효과는 환산할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훨씬 상회하며 갈수록 커진다고 하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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