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석(편집부국장·경제부장)

경제 활성화 명목으로 예산 조기집행이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중앙정부는 기관평가 반영과 인센티브를 미끼로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 이에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해 각급 공공기관들은 예산 조기집행 실적쌓기에 혈안이다. 이를 담당하는 주무 부서는 그래프를 그려가며 각 부서 실적을 체크하기도 하고 미진한 부서에 대해서는 압박을 가한다고 한다. 하지만 경기부양이라는 본래 목적은 달성하지도 못하고 부작용과 폐해만 크게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예산 조기집행은 정상이 아니다.

실적에 눈멀어 예산집행을 떡나눠주기식으로 대충해선 더더욱 안 된다. 한 나라 살림의 쓰임새이기 때문이다. 예산은 적정시기에 법과 원칙에 맞게 체계적·효율적으로 집행해야 한다. 타당성 등을 엄밀히 따져 집행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중앙정부의 예산 조기집행몰이는 정권이 바뀌어도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마치 국민들에게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형국이다.

조기집행은 부득이 할 경우 응급처방에 그쳐야지 몇년간 지속될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예산 조기집행이 얼마나 문제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한 공무원은 조기집행에 대해 “예전에 이렇게 허술하게 예산을 집행했다간 모두 감사에 걸려 징계를 당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선 부서마다 어떻게 예산을 조기에 줘야할지 골몰하고 있다고 했다. 일례로 물건을 받기도 전에 돈부터 줘야 실적이 올라갈 판이니 예산낭비가 불보듯 하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실적에 따른 각 기관 인센티브 또한 조기집행으로 발생한 이자수익 감소분을 상계하면 별 것 아니라고도 했다.

언뜻 예산 조기집행의 직접적 수혜자라고 여길 수 있는 중소건설업자를 비롯한 관급 납품업자들도 환영은 커녕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들은 일부 유동성 위기에 있는 대기업 이외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한 건설업자는 공사 발주가 연중 고루 있어야지 상반기에만 몰리면 자재난, 인력난, 장비 수급문제 등은 물론 부실설계, 부실공사가 나오기 마련이라고 우려했다. 하반기엔 일감이 없어 상반기에 충원한 인력은 내보내고 장비는 세워 놓아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게 정상이냐고 반문했다.

공사 낙찰로 받을 수 있는 선급금도 업체 입장에선 손실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어차피 관급 공사비는 떼일 위험이 없어 수수료가 드는 이행보증을 하고 선급금을 받을 필요가 없는데 억지춘향식으로 받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발주기관의 실적 때문에 말이다. 이들은 공사 진행 실적에 따른 기성고 대금을 더 자주 주는게 낫다고 했다. 어떤 부실업체는 심지어 선급금 수령을 악용해 이를 받은후 부도를 내 하도급 피해는 물론 공사 차질을 빚게 한다고 했다.

이 모두 조기집행에만 급급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성급히 한 결과물일 게다. 한 업자는 푸념했다. “낙찰 받기도 힘들지만 한 해 일감이 일찌감치 마감돼 하반기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희망까지 사라진다”고.

새 정부는 부득이한 응급처방이 단기에 그쳐야지 장기화 되면 위험하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부작용이 커지기 때문이다. 예산 조기집행의 먹구름이 가시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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