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덕규(영문 월간 Diplomacy 회장·11대국회의원)

오는 10일은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인 설날이다.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선조들께 감사와 존경의 표시로 제사를 올리는 명절이다. 타향에서 사는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손녀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모처럼 정을 나눈다. 지난 1년간 못다한 이야기와 함께 덕담을 주고받으며 행복을 만끽한다.

어렸을 때는 설빔으로 새 옷까지 입을 수 있어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곤 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가장 잘해준다는 뜻의 “정월 초 하루처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처럼 우리나라의 설날은 행복의 상징이기도 하다.

필자는 수일 전에 서울에 사는 외국 대사로부터 “설날 기차표를 구매하려고 서울역에 수만 명이 모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휴가철도 아닌데 왜 그러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의아해하는 그에게 우리나라 설 문화를 설명해줬더니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국인이 선조들에게 그토록 감사하고 부모 형제들을 위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으니 나라 발전도 잘 되는 것 같다”고 극찬했다.

오래 전에는 어느 외국 대사에게 우리 나라의 ‘족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한국사람은 가문마다 약 1000년 전의 조상 이름, 벼슬 이름이 적혀 있고, 대를 이어 현재까지 누구의 자손인지를 알 수 있는 족보가 있다고 알려줬다.

특히 김해 김씨 등 일부 성씨는 약 2000년의 역사가 담긴 족보도 있다고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그 대사는 “서양에는 가문의 역사가 모두 담긴 족보는 없다”며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지금부터라도 족보 기록을 시작해 후손들에게 이어가라고 하겠다. 한국의 족보와 같은 것을 만들겠다”고 다짐한 기억이 난다.

또한 필자는 1973년 9월 영국 정부의 초청으로 런던을 방문한 자리에서 20세기 서양 최고의 석학으로 손꼽히는 아놀드 토인비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필자는 토인비 교수에게 한국의 효(孝)사상과 경로사상, 가족 제도 등을 설명했고, 당시 86세였던 토인비 교수는 눈물을 흘리면서 “한국의 효 사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보니 효 사상은 인류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사상”이라며 “한국뿐만 아니라 서양에도 ‘효’ 문화를 전파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어 토인비 교수는 “부모는 영원히 자식을 잊을 수가 없는데, 자식은 부모를 잊을 수도 있는 것 같다. 나도 이제 외로워서 타지에 사는 아들 근처에 가서 살려고 이사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토인비 교수는 1975년 결국 그의 아들 곁에서 타계했다. 토인비 교수와 함께 효 문화를 널리 알리지 못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중요한 건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이유 중 하나가 효 사상을 비롯한 위대한 문화를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1960년대 초기까지만 해도 폐허가 된 조국을 재건할 할 수 있었던 것도 불굴의 의지를 물려준 선조의 덕으로 보고 경건한 마음으로 선조들께 감사해야 한다.

필자가 과거 11대 국회의원 시절 음력 설날과 추석 명절을 공휴일로 지정하자고 주장, 관철시킨 것도 효심에 기초를 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올 설날은 특히 모든 선조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고 제안하고 싶다. 동시에 온 가족이 행복한 설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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