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아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하게 될 '이명박 정권'과 정권출범 한 달을 앞두고 있는 '박근혜 차기정권' 사이에 미묘한 강이 흐른다. 이들 정치권력 간엔 '정권 재창출-정권 연장'의 과업을 이뤄냈기에 협력적 모드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몇몇 구체적 사안에선 예사롭지 않은 갈등 기류를 형성하곤 한다.

임기 말 특별사면을 둘러싼 양측의 대립각도 그 중의 하나다. 박근혜 당선인 측이 공개적으로 임기 말 사면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부정부패 연루인사들에 대한 사면은 국민을 분노케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럴 경우 차기 정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뻔하다.

청와대가 즉각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기에 이르렀다. "사면이라는 것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법과 정해진 원칙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발언이 보도됐다. 차기 정부에서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는 메시지로 들린다. 임기 말 특사가 결국은 차기 정권의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는 논리도 편다.

그러나 특별사면에 대해선 민심도 대체로 호의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 내에서는 상당 수준의 심의 절차가 마무리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대통령의 결심만 남은 상태라는 것이다. 내일(29일) 국무회의에서 특사안이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역대 정권에서도 그랬듯이 국민대통합이라는 차원에서의 명분론이야 그럴 듯하다.

다만 문제는 그 사면 대상에 대통령의 측근 및 친인척이 거론되면서 민심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사 대상으로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대통령의 사촌 처남인 김재홍 씨,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등이 끊임없이 꼽히고 있다. 이들과 함께 친박 인사와 야권인사도 적당한 선에서 물타기 식으로 특별사면을 단행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임기 말 특별사면 논란 가열 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요소를 두루 갖췄다. 재판과정에서 그토록 억울하다거나 무죄를 주장하던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갑자기 상고를 포기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형이 확정돼야 비로소 사면을 받을 수 있기에 그러하다.

아니나 다를까. 임태희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이 20일전 본격적으로 여론 떠보기에 나섰다. '새 임금이 나오면 옥문을 열어준다고 한다. 이런 대화합 조치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는 그의 비유가 가관이다. 끼리끼리 '셀프 사면'이니 정권 말기에 풀어주고 튀는 이른바 '풀튀 정권'이니 하는 말이 나도는 배경이다.

이 대통령 자신도 2009년 6월 라디오 연설에서 "제 임기 중에 일어난 사회지도층의 권력형 부정과 불법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대로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이라고 표명한 바가 있다. 박 당선인 또한 친인척 비리 엄단과 더불어 사면권 제한에 대해 누구보다도 확고부동한 입장을 보여주었다.

어제 말 다르고 오늘 말이 다르다면 내일 말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떤 목표만 설정되면 자신의 소신이나 염치, 가치관 따위는 손바닥 뒤집듯이 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누구를 믿을 수 있는가. 정치 불신은 바로 이런 데서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다.

자신의 말에 책임지는 지도자인가 여부는 금방 판명나게 돼 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가 있다. 임기 말 낙하산 인사 시비가 나온 데 이어 헌재소장 후보자 부적격 논란, 그리고 4대강 부실 문제 등도 불거졌다. 양측의 향후 행보에 더욱 주목하게 되는 이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는 정권'은 '뜨는 정권'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전차복철(前車覆轍) 고사처럼 성공하는 정권이 되려면 앞사람의 실패 전례를 거울삼을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