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 알려준 대전처녀

70년대의 우울한 유신시대에 필자는 서울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때 대전역전에는 LP판을 꽤 많이 가지고 있던 음악다방이 있었다.

그날도 그 음악다방에서 하루를 달래고 올라갈 양으로 아침 첫차로 내려와 한밭식당에서 설렁탕 한 그릇을 치우고 올라갔을 때 다방아가씨가 바닥에 물을 뿌려가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때 청바지를 꼭 끼게 입고 덜렁덜렁하게 생긴 아가씨 하나가 무언가를 무겁게 들고 올라와 카운터에 내려놓고 다방아가씨에게 말했다.

"언니, 청소는 내가 해 줄게. 들어가서 밥 먹어. 손님도 별로 없으니까 내가 가지고 온 판 좀 하루 종일 들을 거야."

그러다가 구석에 앉아 있는 나를 흘끔 보더니 그 아가씨는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아저씨, 제가 오늘 엄청나게 놀라운 음악을 들려 드릴 테니까요, 이따가 점심 사실래요."

"어, 그럽시다. 음악만 좋다면야 점심뿐이겠소."

우리는 그야말로 0.5초 내로 친밀해졌고 뒤따라 들어온 또 한사람의 아가씨와 함께 자연스럽게 술판을 벌였다. 술은 그 다방에서 파는 국산 위스키였다.

70년대 얘기니까 그 시절 국산 위스키의 질이 썩 좋은 것은 아니어서 이내 뒷골이 당겨오기 시작했는데, 취기가 오르자 자연스럽게 통성명도 하였다. 그 아가씨들은 대전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었는데, 판을 들고 온 여학생은 놀랍게도 물리학을 전공하는 과학도였고, 수줍은 척하면서 위스키 잔을 날름날름 비우던 여학생은 간호학과 재학생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채근을 하였다.

"학생, 무슨 음악인데 이렇게 거창해. 생전 처음 들어보는 교향악인데. 나도 음악다방깨나 쫓아다닌 몸인데, 이건 정말 생소하네."

그녀는 단호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처음 들어보시는 곡일 걸요. 이건 우리 정부당국에서도 철저히 금하는 곡이에요. 아저씨나 나나 이 곡을 들었다는 것을 정보부 끄나풀이나 경찰들이 알았다가는 다 잡혀 가게 될 걸요. 하지만 무식한 그것들이 이 위대한 쇼스타코비치를 알기나 하겠어요."

나는 그때 마시던 술이 확 깨는 것을 느꼈다. 쇼스타코비치라니. 당시 나는 그 엄청난 러시아 작곡가의 이름을 음악 마니아들을 통해 겨우 전해 들었을 뿐이었고, 그의 교향곡 시리즈 중에는 '10월 혁명에 바친다', '1905년 혁명', '1917년 혁명' 같은 이데올로기 편향적인 곡도 있다는 것을 들었을 뿐이었다.?

"아저씨, 왜 그렇게 얼굴이 하얘지세요. 겁나세요.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이 1917년이에요. 혁명이 한참 진행 중이네요. 레닌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죠, 아마."

나는 더듬거리며 그 여학생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 판을 어디서 구한 거야."

"동경에 있는 제 약혼자가 약혼선물로 부쳐 준 거에요. 그 무식한 국제우체국 직원들이 이게 뭔지 몰라서 그냥 통관시켜 주고 정보부 사람들도 쇼스타코비치를 몰랐던가 봐요. 호호호."

그렇다. 그때는 유신의 독기가 한참 올라 있던 1970년의 중반 가을이었다. 공군장교 후보생들이 무시로 드나들던 그 음악다방에서 내가 그 겁 없는 여학생 덕분에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2번 '1917년 혁명'을 들었던 것은 행운이자 모험이었다.

아무튼 나는 심장이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술값과 안주값을 황급히 치르고 저녁차를 타고 상경하였다.

그후 그 여학생이 동경에 있다는 그 약혼자와 결혼은 잘했는지, 학교는 제대로 졸업을 했는지, 가끔씩 궁금하였다. 충남대학교 문리과대학 물리학과를 70년대 중반에 졸업했을 그 여학생, 아니 지금은 50대 할머니가 되었을 그 아주머니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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