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수(한국문화예술위원회 중부협력관)

십시일반(十匙一飯)이란 말이 있다. 열 사람이 각자의 숟가락으로 밥 한술씩 떠서 차린 밥상이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수난기를 겪으면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씩 양보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해왔다. 서양에서도 기부(donation)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사회적 공익이나 뜻 있는 일을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이 가진 돈, 물건이나 재능 등을 내놓는 것이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외국의 대단한 재력가 중에 사회를 위해 자신이 가진 많은 것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기부한 훌륭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역시 거상 김만덕, 경주 최부자, 유한일 박사, 가수 김장훈 등 가진 것을 사회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었던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있다.

얼핏 보면, 가진 것을 나눠주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하여, 거액의 기부자들에 관한 신문기사를 접할 때면 왠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카네기홀, 록펠러 재단, 노벨상, 유한양행 등등 사건으로 접해지는 기부행위가 평범한 시민과는 무관한 환영처럼 보이지만 어려운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들을 돕고자 하는 바는 인지상정(人之常情)인 바, 누구나 희망하는 바일 것이다.

이제 인터넷을 통해서 작은 힘이지만 우리가 함께 사는 사회에 힘을 더하는 소위 소셜 펀딩(Social Funding)이 가능해졌다.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문화예술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소액 기부인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이 우리나라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문화예술분야의 크라우드 펀딩이란 예술가 또는 예술단체의 특정한 프로젝트 실현을 위해 사업의 취지에 동의하는 익명의 다수 개인 후원자들로부터 사업비용 중 일부를 기부받는 모금방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온라인 기부 사이트(fund.arko.or.kr)를 통해 처음 도입됐다.

크라우드 펀딩의 첫 번째 프로젝트에는 설치미술가 박기원 작가의 '예술가의 집' 설치작품 제작과 이원국 발레단의 돈키호테 공연 의상비 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한 달간 모금됐으며 각각 500만원 이상 모금되는 등 모두 7개 프로젝트에 761명이 참여해 4억 9467만원을 모금한 바 있다. 2012년 역시 국악 응원 프로젝트 ‘오성과 한음’, 아트버스 프로젝트 ‘오! 재미’, 소록도병원 옹벽 벽화작업을 위한 ‘아름다운 동행-소록도 사람들’등 다양한 예술프로젝트의 크라우드 펀딩이 성공했다.

대전에서도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기부문화가 거의 전무하다고 자평하는 대전에서 순수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 가능성은 출발부터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2012년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대전문화재단에서 도입하여 운영한 대전 크라우드 펀딩의 연이은 성공은 이런 부정적 견해를 완전히 불식시키고 위대한 대전 시민들의 힘을 보여준 쾌거였다. 대전에서도 '텀블벅', '펀듀'라는 기부 플랫폼을 통해 안나, 남형돈, 김기현-이재규-송인 등 대전 작가들의 3가지 예술프로젝트가 대전시민의 힘으로 성공하게 된 것이다.

작은 기부자들 덕분에 대전 궁동에서 켈리그래피를 활용한 한글 사랑 캠페인이 가능했고, 충남대병원 소아병동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전시와 대전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대흥동 미술관을 방문해 나만의 문화지도를 만들 수 있게 되는 등 대전 시민들의 작은 나눔으로 모두가 큰 행복을 얻게 된 위대한 일이었다. 대전을 아름답게 만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힘, 문화예술 소액 기부 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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