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옥 칼럼]
안이한 자세로는 이룰 수 없다
공약 이행 객관화·투명화해야
신뢰사회 구축 시발점 삼을 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심기가 많이 불편한 듯하다. 자신이 내세웠던 대선 핵심공약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정부 해당 부처에서 제동을 거는 모양새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4대 중증질환 치료비 국가책임, 군복무 기간 단축 등의 공약에 대해 보건복지부와 국방부 등이 소극적으로 대처했으니 약속과 신뢰를 중시해온 박 당선인으로선 심히 거북할 것이다.

대변인이 나서서 박 당선인의 의중을 소상하게 설명하면서 각 부처가 그렇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공식 표명했다. 정부의 안이한 자세만을 비판한 게 아니다. 국민입장에서 대선공약을 실현시키기 보다는 예산 타령부터 늘어놓는 공무원 논리, 관료 사회의 경직성을 정면으로 제기한 것이다. 공직사회에 대한 박 당선인의 첫 ‘경고’ 성격이 짙다.

인수위가 각 부처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과성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인수위는 이미 박 당선인의 국정철학을 담은 공약 이행과 실현 가능성 등을 골자로 정부 부처 업무 보고에 적용할 7가지 체크리스트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일부 부처에서 점검 항목별로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다보니 끝내 이런 사달이 생긴 듯하다.

그럴 경우 역대 인수위원회는 한발 더 나아갔다. 공직사회의 복지부동·무사안일·철밥통 행태를 겨냥, 변화와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허다했다. 코드가 맞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공무원들을 탓하기 일쑤였다. 새 시대 새 정책 추진의 걸림돌이라는 낙인찍기는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정권이 교체되면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역대 인수위에 대해 '점령군' 시비가 일었던 것도 그런 경로에서였다. 결국 '우리가 동네북이냐' '반성문을 쓰라는 거냐'는 공직 내부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고위 공직자 중심으로 인적쇄신 바람이 부는 게 예사였다. 1급 공무원들이 잇따라 사표를 내는 풍경이 그리 낯설지 않다.

임기 초반 개혁드라이브는 공직사회로부터 시동을 거는 게 일반화돼 있다. 차기 정부에서도 공직사회 변화가 불가피하다. 박 당선인의 정치쇄신 공약은 국회개혁, 정당개혁, 국정운영 개혁, 정부 개혁 등 4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어느 정권보다도 강도 높은 개혁이 각 분야별로 예고돼 있다. 매머드 태풍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박 당선인의 반응이 나오자 공직사회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각 부처마다 대선 공약 실현 가능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느라 분주하다고 한다. 박 당선인측은 공약준비 단계에서 공약 실현가능성과 재원대책 등의 여건을 철저하게 따졌으므로 공약 이행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혀왔다.

박 당선인이 지방공약에 대해서도 챙길 것을 주문했다. 그래선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인수위 활동을 주목하는 분위기가 두드러지고 있다. 각 지자체마다 '인수위 줄대기'에 여념이 없다. 대선공약을 포함한 지역현안을 새 정부 국정 과제에 반영시키기 위해서다. 혹여 지역현안이 새 정부에서 채택되더라도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릴 수도 있으니 지역민으로선 최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충청권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명품 세종시 건설, 과학벨트 구축, 충남도청 이전 소재지 지원 및 이전부지 개발, 도시철도 2호선 및 충청권 광역철도망 조기착공, 백제 역사문화도시 조성, 태안 유류피해 배상 문제, 통합 청주시 지원, 청주공항 경쟁력 강화, 충청 내륙교통 인프라 확충 등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업이 한둘 아니다.

지난 날 세종시 수정안을 비롯해 과학벨트 입지 선정절차 등의 문제로 적지 않은 홍역을 치른 바 있는 충청 지역민으로선 국책사업 추진 과정의 무원칙-역차별로 인한 심적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런 불행한 일이 또 반복돼선 곤란하다. 신뢰사회 구축-'사회적 자본' 확충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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