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순(사회부 차장)

2010년 10월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G20 정상회의 개최를 기념해 열린 '고려불화대전'에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 예술품으로 꼽히는 고려불화를 보기 위해 구름 관람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현존하는 고려불화는 160여점이지만 국내에는 10여점만이 남아 있어 대부분의 전시물이 외국의 박물관과 사찰, 개인 소장품을 대여해 열렸다는 희귀성과 고려시대 예술성의 정점에 있었던 걸작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최대 흥행 요소는 국내 교과서에 고려 문화의 정수로 표현된 불화인 '수월관음도'가 일본에서 건너와 선을 보이게 된 이야기가 알려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수월관음도는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품으로 현지 학자들조차 접근이 쉽지 않았고, 국내 전시는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었다. 당시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센소지 측에 사정을 설명하고 수월관음도 대여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국내에서 일본으로 반출된 국보급 불화를 전시회를 위해 순순히 빌려 주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최 관장이 센소지에서 이 불화를 처음으로 대면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감동을 받아 몸을 엎드려 삼배를 올렸고, 이 모습에 감복을 받아 센소지 측에서 대여를 허락했다고 한다. 이 얘기가 알려지면서 수월관음도에 대한 신비스러움과 호기심이 증폭돼 관람객이 연일 몰렸고, 전시회는 대성공을 거뒀다.

이른바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힘이다. 단순한 사물이나 장소라 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이나 일화, 문학적인 상상력 등을 통한 이야기가 입혀지면 그 사물과 장소는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 단숨에 변모하게 된다. 스토리텔링의 효과는 막대한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도시의 형태까지 바꿔 놓을 만큼 파괴력이 뛰어나다.

중국 윈난(雲南)성 정부는 1997년 기자회견을 갖고 디칭(迪慶) 티베트족 자치주 중뎬(中甸)현이 전설 속의 '샹그릴라'라고 선언했다. 전문가를 동원, 연구를 벌인 결과 중덴이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지상낙원으로 그려진 ‘샹그릴라’라는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전설 속의 장소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어찌 보면 허무맹랑한 중국의 주장은 각박한 사회질서에서 벗어나 이상향을 희구하는 서구인들의 각광을 받으며 이야기 속을 벗어나 실제로 '샹그릴라'로 자리매김했다. 해발 3000m가 넘는 척박한 작은 마을인 중뎬은 지상천국을 보기 위해 매년 수백만명이 찾는 유명 관광지로 부상했고, 관광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지역경제의 호황을 이끌고 있다.

대전에서도 스토리텔링의 효과를 여실히 증명하는 사례가 있다. 요즘 대전역 대합실에 가면 빵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진풍경이 연출된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성심당 대전역점의 '튀김소보로'를 사기 위한 행렬이다. 평균 20분은 기다려야 살 수 있고 물량이 달려 한 번에 6개 이상 팔지도 않지만 인기가 높다. 맛도 뛰어나지만 57년간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대를 이어 기부문화를 실천하며 굴지의 프랜차이즈 제과점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은 성심당에서 부동의 판매 1위 빵이라는 사실이 대전을 찾는 외지인의 구매력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유형의 하드웨어로 경쟁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콘텐츠 등 무형의 소프트웨어를 개발, 발굴해야 승산이 있는 것이다. 잘 만들고 잘 가꾸는 것도 좋지만 한계가 있다. 상품을 팔거나 원도심 활성화 등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하드웨어에 스토리텔링 소프트웨어를 입혀 고객이나 관광객이 스스로 찾게 하는 마케팅이 가장 효율적인 것이다. 그래야 제2, 제3의 ‘튀김소보로’가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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