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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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甲子士禍(14)


남천군은 천성이 우매하였으며 그의 부인 최씨는 성질이 음탕하여 아들 문성정이 간부(姦夫)의 자식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가풍(家風)이 더러웠다. 게다가 최씨는 며느리 임씨를 곱게 보지 않고 걸핏하면 꾸짖고 야단을 쳐 임씨는 사흘이 멀다하고 친정으로 쫓겨오곤 하였다.

임씨가 쫓겨온다기보다는 스스로 도망쳐 온다는 것이 옳을까.

문성정은 아직 미성년(未成年)이면서도 가풍 탓인지 일찍부터 기방(妓房) 출입을 하였다. 임씨가 시댁에서 참고 배겨내지 못하는 이유의 하나였다.

임숭재는 왕에게 바칠 미인을 물색하느라고 고심하다가 친정에 와 살다시피 하는 누이동생 임씨를 화제에 올린 일이 있었던 것이다. 임씨는 그런 화제에 오를 만한 미모의 여자였다.

"가문으로 보나 외모로 보나 출가만 안했으면 귀인(貴人=종일품 내명부)도 만들 수 있고, 빈(嬪=왕후 다음 자리인 정일품 내명부)도 만들 수가 있는 것인데, 참 아깝게 되었단 말이오."

"누가 아니랍니까. 상감마마께서는 과부나 처녀보다 유부녀를 더 좋아하신다니까 유부녀를 후궁으로 입궁시키지 못할 바에는 상감마마께서 우리 집에 잠행(潛行)하시는 기회에 하룻밤쯤 시침(侍寢)을 하게 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지요. 다만 시누이가 말을 들을 것인지 그것이 의문이지만…."

"옹주마마께서 한번 꾀어 보시고, 말을 안 들으면 어명이라고 강제하는 수밖에 없겠소."

"그럼 내가 한번 꾀어 볼까요? 호호호."

남편 임숭재의 간교함에 뒤지지 않는 간물(奸物)인 휘숙옹주는 그런 일이라면 절로 흥이 나는 것이었다.

"옹주마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오. 빨리 아랫것들 시켜 별당 방을 치우고 군불을 넣고 비단 금침을, 그리고 주안상을…."

"그런 건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대감께서는 미행(微行)하시는 상감마마를 맞을 적에 실수가 없도록 별배(別陪) 놈들이나 잘 단속하시구려."

휘숙옹주는 설렁줄을 잡아당겨 노비들을 불러모았다.

달이 구름 속에 들어 음침한 밤이었다. 안개가 낀 듯 눅눅하고 썰렁한 야기(夜氣)를 쐬며 임숭재는 대문 밖에 나와 떨고 서 있었다. 간사하고 교활하여 왕의 환심을 사는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지 서슴지 않은 그로서는 그까짓 것쯤은 고생이랄 수가 없었다.

어지간히 지치게 기다려서야, 선비 복색으로 변장을 한 왕이 역시 하인배로 변복을 한 내시에게 등불을 들려 앞세우고 나타났다.

"야기가 쌀쌀하온데 미행(微行)을 하시오니 문전의 영광이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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