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없이 정계은퇴 '한나라 전략通'

▲ 윤여준 전 의원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뒤 '미련없이' 현실정치에서 물러난 논산 출신 윤여준(65) 전 의원은 아주 홀가분한 모습이었다. 지난 9일 서울 도심 한 호텔에서 만난 윤 전 의원은 '노타이' 차림에 책 한 권을 들고 편안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무거운 짐을 벗은 느낌입니다. 지금껏 읽고 싶어 집에 쌓아 놓은 책이 제 키만큼 되는데 이제 푹 파묻히고 싶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윤 전 의원은 혈색도 지난 총선 때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논산시 광석면 오강리 208번지에서 태어난 윤 전 의원은 기자생활을 시작으로 공직에 20년이 넘게 몸담았고, 1998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요청으로 현실정치에 뛰어들었다.

2000년 비례대표로 등원한 윤 전 의원은 초선의원에 불과했지만 이 전 총재의 측근이며 브레인으로 당내에 강력한 입지를 갖고 있어 초선을 뛰어넘은 파워를 가졌다.

"지금도 제가 초선했다고 하면 믿지를 않아요. 모두들 재선아니냐고 묻곤 하지요. 현실정치에 몸담고 있는 동안 많은 일이 있어서 그런 모양입니다. 하하하."

윤 전 의원의 말대로 그는 정치에 뛰어들면서 당내외에서 핵심 브레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2000년 개혁공천을 통해 당내 중진을 대거 탈락시킨 일은 유명하다. 그 때문에 이후 당내에서는 그에 대한 견제가 심해졌고 2002년 대선 과정에서는 철저하게 '소외'됐다.

한나라당은 대선에서 패배한 뒤 당을 추스리는 과정에서 윤 전 의원을 필요로 했다. 지난 총선에서는 박근혜 대표의 부탁으로 총선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을 맡아 '탄핵후폭풍'에도 불구하고 121석을 얻어 '역시 윤여준'이란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

윤 전 의원은 고향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갖고 있다. 논산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아 '고향친구'가 없는 점을 가장 아쉬워 하는 것도 고향에 대한 그의 애정을 보여 준다.

"일곱 살 때까지 논산에서 살았는데 선친께서 해방 후 이승만 박사 귀국하신 뒤 비서로 일하게 돼 서울로 갔지요.그 때문에 학교 친구가 없어요. 아쉽기도 하지요. 어릴 적 생각은 지금도 많이 납니다. 조부께서 사랑채에 저를 비롯한 사촌형제들 모아놓고 논어, 맹자 등 한학 공부를 시키셨는데 암송을 못하면 혼쭐이 났지요. 누님들 졸라 산나물 캐러 갈 때 뒤따라 다녔는데 누이들은 귀찮다고 안 데리고 가려 했지요. 지금도 참 많은 기억들이 나네요. 하하."

윤 전 의원은 고향이야기가 나오자 참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러면서 아쉬움도 나타냈다.

"집안 행사로 최근에 들렀는데 길이 완전히 달라져 깜짝 놀랐어요. 집 입구에 느티나무가 줄줄이 있었는데 새로 길이 나고 나무는 사라졌더라고요.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던 길인데 섭섭한 생각이 들었죠."

윤 전 의원은 고향에 대한 애정을 정치권에서도 풀어보려 했던 것 같다.

"제가 사실 지난 2002년 대선기간에 선거캠페인에도 참가 못하고 야인 생활 비슷하게 했지요. 그러면서 대전, 충남을 순회하며 충청도 인재들을 많이 만나려고 했어요. 그때 생각은 이 전 총재가 대권을 잡으면 고향 젊은이들을 중앙무대나 지방무대에 대거 진출시키려는 것이었지요. 충청도가 인재를 너무 안키웠거든요."

이번 총선에 부본부장을 맡아 총선을 기획한 윤 전 의원은 '정치를 더 하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사실은 지난 대선 직후 정계를 떠나려고 했었다'고 털어놓는다.

"제가 정치권에 입문한 것은 이 전 총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이 전 총재가 낙선하자 그 의미가 사라졌지요. 대선 직후 이 전 총재가 정계은퇴 선언한 것을 보고 일주일 정도 있다고 그만두려고 했는데 당시에 당 중진들이 '지금은 때가 아니다. 전당대회 후에 그만두더라도 그만두라'고 만류해 은퇴선언을 하지 못했지요. 전당대회가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지다 보니 '16대 국회의원 끝내고 그만두겠다'고 생각이 정리되더라고요."

윤 전 의원은 최병렬 전 대표나 박근혜 현 대표에게 '공천을 줄테니 함께하자. 여의도 연구소를 확대 개편해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윤 전 의원은 탈당하고 현실정치를 떠났다.

이제는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제가 서울 같은 곳에서 국회의원에 나와 당선된다고 해도 몇번을 하겠습니까. 한번 아닌가요. 한번 하자고 좋은 후배들의 길을 막을 수는 없지요. 그리고 환갑이 넘으면 자신의 살아온 길을 한번쯤 돌아봐야 합니다. 남아 있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모색도 해야 하고요."

탈당계까지 당에 제출하고 현실정치와 인연을 끊은 윤 전 의원은 내년쯤에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할 계획이다. 그동안 '일 중심'으로 살아온 생활을 '나 중심'으로 살고 싶은 게 윤 전 의원의 생각이다.

윤 전 의원은 골프를 안친다. 정치인이었고 9년 동안 청와대에 근무한 경력 때문에 골프를 할 만도 하지만 '자식교육' 때문에 지금까지도 골프를 안하게 됐다.

"80년대 초에 골프를 배우기는 했는데 이 운동을 하게 되면 주말, 휴일을 밖에서 보내야 되지요. 청와대 근무할 때 너무 바빠서 평일은 아이들과 대화할 시간이 없었어요. 골프대신 아이들과 농구, 축구, 캐치볼 등을 하며 놀았지요. 그러면서 아이들과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지요. 지금도 아이들과 많이 이야기 합니다. 강요가 아니고 토론인셈지요. 골프하던 친구들은 나중에 자식들과 많이 싸우고 속앓이를 한 모양인데 저는 그런 건 없지요. 허허."

교육에 대한 각별한 생각 때문인지 그는 한국사회의 비전으로 '인재 육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가 가진 자원이라고는 인적 자원만 있는 것 아닙니까. 21세기 사회가 세계화, 정보화 사회라고 하면 그 사회에 맞는 21세기형 인재를 만들어야지요. 우리가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지 조금 걱정이 되고요. 지금부터라도 21세기형 인재 만들기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봅니다."?

윤여준 전 의원은…

▲1939년 논산 출생

▲동아일보, 경향신문 기자

▲대통령 공보비서관, 의전비서관, 정무비서관

▲국가안전기획부 제3특보, 환경부 장관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 2000년 총선기획단장·선거대책위원회 종합조정실장

▲16대 국회의원, 2004년 총선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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