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정치검찰 족쇄 벗어나야, 국민검찰 신뢰 회복할 수 있다
차기 정권에서도 교훈 삼을 때

# 2003년 3월 9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평검사의 공개 토론회. 헌정사상 처음 있었던 일이다. TV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대통령 취임 초인데다 토론 형식의 파격성과 인사문제에서 촉발된 검찰개혁이라는 주제의 엄중함에 비춰볼 때 일대 사건이라고 할만하다.

평검사들이 대통령 면전에서 노 대통령과 여권 인사 등과 관련된 '청탁', '친인척' 등 인식공격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젊은 검사들의 배짱과 입담, 논리 속엔 검찰이 도매금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데 대한 억울함을 토로하는 심정이 깔려 있었다.

양측의 이견이 끝내 격돌하는 순간 노 대통령은 격렬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불쑥 한마디를 던지고 말았다. "이쯤 가면 막 하자는 거죠?" 전국이 긴장하는 것은 당연지사. 공개토론회 결과 검찰개혁의 국민적 공감대를 일정 부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는 방법론상 차이는 워낙 커보였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결론은 명백하다. 첫째 검찰 조직의 문제를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검찰의 원죄와 업보는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정치검찰 시비까지 겹쳐 검찰이 최악의 몰골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검찰개혁은 또 다시 이 시대의 화두가 됐다.

# 엊그제 검찰총장이 불명예 퇴진하는 일련의 과정 그 자체는 오늘날 한국 검찰의 고질적인 병폐와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 준 사례다. 검찰특유의 상명하복의 체제가 무너졌다. 검찰총장의 부적절한 리더십으로 인해 마침내 항명파동이 일어났다. 정치검찰의 오명에 시달리던 검찰총장이 후배들에 의해 쫓겨난 것이나 진배없다. 부끄러운 검찰 초유의 내분 사태로 길이길이 기록될 판이다.

검찰의 위기는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부패한 데서 일단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 결과 검찰이 경찰과 함께 최하위권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비리로 홍역을 치르고도 그 때뿐이다. 희대의 사기범 등으로부터 수억원 뇌물을 챙긴 부장검사, 피의자 성추문 검사 등의 갖가지 유형의 검찰비리가 잇따라 터졌다. 그래도 검찰 지도부는 제 살길만 찾는 책임회피식 권력게임으로 망신을 자초했다.

더욱이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건 평검사회의의 진정성을 의심할만한 대목이 불거졌다는 점이다. 자체 개혁안을 물타기 식으로 적절히 활용하면 오늘의 사태를 적당히 넘길 수 있다는 의혹까지 나왔으니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오는 게 아닌가. 대선후보들의 동향과 연계, 그 명분을 짜 맞추는 유치한 발상을 보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과연 검찰이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의 수호자, 인권 보장의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원천적인 물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앞에 섰다. 대통령과의 인맥 중심으로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을 비롯해 요직의 인사권을 행사한 후 청와대 입맛대로 검찰 권력을 휘두른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검찰이 '정권의 시녀'로 전락할 경우 검찰 권력행사의 정당성,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현 정권 출범 이후 검찰에 대한 국민 불신이 예사롭지 않다. PD수첩, 정연주 전 KBS 사장, 미네르바 사건으로부터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내곡동 사저매입 의혹 사건 등에 이르기까지 부실·왜곡·표적·편파 시비가 남아있다.

검찰의 뼈아픈 자성이 전제돼야만 하는 시점이다. 검찰 본연의 윤리의식 및 사명감을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 제도 개혁도 실효를 거둘 수 있다. 미래 권력을 창출하려는 대선 후보들도 중수부 폐지를 비롯해 여러가지 검찰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의 사태에서 엄중한 교훈을 삼지 않으면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검찰은 개혁의 칼날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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