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자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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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자퇴하겠습니다”
  • 충청투데이
  • 승인 2012년 11월 12일 20시 24분
  • 지면게재일 2012년 11월 13일 화요일
  •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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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재수결심 말하던 날, 아버지 노발대발 화내며 나가, 어찌어찌하다 수능 세번 봐, 지금 생각하면 죄송스런 순간
   
 

다음 글은 어찌어찌하다가 수능을 세 번 보았던 내 청춘의 이야기다. “어머니, 저 할 말 있는데요” 대학교 1학년이었던 2003년 여름, 후덥지근한 여름밤이었다. 그 날은 유난히 똥줄이 탔다. 아버지는 TV를 보시느라 거실에 누워 계셨고, 어머니는 설거지를 끝내시고 내 방에 들어와 방바닥이 더럽다며 잔소리를 하시는 중이었다.

“무슨 할 말?” “그게 저…” 어머니는 내 표정을 보고 귀신같이 알아채셨다. 동정심을 구하는 의도된 표정이긴 했지만. “너, 무슨 일 있구나, 빨리 말해봐” 최대한 우울한 표정으로 말씀드리면서, 어머니의 표정을 재빠르게 훑었다.

“저, 학교 자퇴하고 싶어요, 적성도 안맞고, 등록금도 비싸고” “뭐? (한숨) 그걸 말이라고 해?”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았다. 도저히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아버지한테 먼저 말을 했다면 귓방망이가 날라왔겠지만 어머니는 그래도 대화하려고 애쓰셨다.

“이놈의 자식아, 멀쩡하게 다니다가 왜 그만둬? 뭔 일 있는거야?” “말씀드렸잖아요. 적성도 안맞고, 또…” 어머니는 계속 한 숨을 쉬시더니 방을 나가셨다. 나는 내 방에 덩그러니 찬밥처럼 남겨졌다. 엎질러진 물, 싸질러 놓은 오줌이었다. 1시간쯤 흘렀을까. 사자후가 거실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이놈의 자식! 나와와와와왓!” 두둥~. 드디어 소환명령이 떨어졌다. 어머니는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셨던 것이다(이것도 의도된 것이었다). 직접 말하면 타격이 크니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께 내 의사를 전달했던 것이다.

아버지의 따발총 연설(?)이 시작되었고, 그 말들이 가슴에 훅훅 총알처럼 박혔다. 나는 무릎을 꿇은채 끽소리 하지 않고 들었다. 그리고는 급기야,

“저놈의 책 다 불질러 버려” 거실 책장에 있는 책들을 다 불질러 버리라는 이야기였다. 고등학교때부터 교과서와 관련된 책은 안사고 엉뚱한 책만 많이 보았었다. 학교성적은 계속 내려갔고, 아버지께서는 그런 내가 못마땅하셨나보다. 재밌게 읽었던 보물같은 책들을 불태우라는 말씀에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고개를 떨군 채 끽소리 못했다.

“불질러 버리라니까?” 그 와중에도 순간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화가 나셔서 그런 걸꺼야. 여기서 불태우면 집 한채 날라갈텐데, 저 많은 책을 옮겨서 야외에서 불태워야 할텐데, 아버지가 직접 그러실 일은 없고, 어떻게든 이 순간을 모면하자, 제발 제발”

아버지는 불질러버리라는 말을 몇 번 계속하시다가 베란다로 나가셨다. 아버지의 뒷모습 너머로 담배연기가 힘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 후로 몇일간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냉기가 흘렀다.

몇 일 후 아버지는 소주 한잔을 하자며 나를 불렀다. 차분한 목소리였지만 아직 화가 안풀리신 듯 했다. 나는 어머니의 코치대로 아버지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했다. “아버지, 저 재수하겠습니다” “흠… 하… 후… 알았다.”

아버지는 계속 소주를 따라 마셨다. 새로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알게 된 거지만, 부모님은 그때 빚을 내서 내 등록금을 마련하셨다. 사립대였기 때문에 등록금도 만만치 않았고, 생활비와 기숙사비를 합치면 들어가는 돈은 무척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죄송스러운 순간이었지만, 그렇게 자퇴결심을 이야기하고 여름방학이라 썰렁했던 대학교 캠퍼스를 찾아갔다. 스무살의 여름은 내게는 겨울이었다. 자퇴서를 낸 순간엔 몰랐다. 앞으로가 첩첩산중이라는 사실을.

<이야기캐는광부 http://v.daum.net/link/36419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