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철 대전복지재단 대표

출범한 지 100일도 지나지 않은 대전복지재단이 ‘쪽방마을 사랑나누기 사업’이란 거창한 일을 벌인 지도 거의 한 해가 다 돼가고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몰랐던 것 같다. 사실 이 지역은 오랜 기간 그저 눈에 보이는 부족한 부분만 간간이 메워 주는, 염홍철 대전시장의 표현대로 ‘복지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부끄러운’ 소외된 지역이었다.

지난 2월 재단 직원들이 처음 주민을 만나러 갔을 때 분위기는 추운 날씨만큼이나 냉랭했다.

하지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다가가는 재단 직원들에게 주민은 하나둘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엔 자신의 신세타령이나 말동무로 시작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론 자신들의 희망과 기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130여 명의 주민과 재단이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시작한 한글교실에는 개근하고 있는 두 모녀가 있다. 지적장애 2급인 딸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아무런 교육기회를 얻지 못하고 30년 넘게 쪽방에 살고 있다. 종일 방에서 헝클어진 모습으로 뒹굴던 모습이 어머니와 함께 한글교실에 나오면서 눈에 띄게 달라졌다. 아직은 네모 그리기도 어려워하는 형편이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표현이 다양해지고 사회성도 향상돼 새로 배운 단어들을 중얼거리기도 하고, 밝은 표정으로 먼저 인사도 건넨다.

어머니 또한 한글날을 맞아 청남대를 갔을 때, 표지판이나 안내문의 글귀를 알아볼 수 있다며 한 자 한 자 짚으며 마냥 즐거워했다. 이 어머니는 벌써 공책을 열 권 넘게 썼다. 두 모녀에게 한글교실은 중요한 일과이며 나들이 장소가 됐다.

일거리를 만들어 달라는 주민의 요구에 우선 쉬운 콩나물 기르기부터 시작했다. 일주일을 키워야 먹을 수 있는 콩나물은 세 시간에 한 번씩 물을 주어야 한다. 물을 주기 위해 밤잠을 깨야 했고, 한 어르신은 드시던 술도 끊었다. 작은 관심과 노력으로 쑥쑥 자라는 콩나물을 보고 본인도 믿기 어려운 심리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지금은 주위 분들과 나눠 먹을 정도의 단계지만, 앞으로 판매를 목표로 점차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일단 시작된 변화를 유지하고 지속화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문화와 교육이 함께 개입돼야 한다. 이를 위해 대전문화재단과 대전평생교육진흥원, 대전복지재단이 협약을 맺고, 힘을 합쳐 쪽방마을에 새로운 시도를 하기로 했다. 주민과 상의해 도서관이나 합창단, 사물놀이패도 만들고 싶고, 찾아가는 인문학 강의도 할 것이다. 복지와 문화 그리고 교육의 사각지대였던 쪽방마을에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펼쳐질 것이다.

이 사업을 하면서 많은 분들이 소리 없는 도움을 주셨다. 한글교사를 자원하신 분, 무료 진료를 해주신 치과의사, 개원식에 들어온 쌀을 기증해 주신 병원장, 모기 방역과 어지러운 전기배선을 정리해주신 목사, 장대비가 내리는 궂은 날에도 무거운 밑반찬 배달을 해주신 사례관리자님 등.

재단은 이들을 찾아내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복지 수요를 찾아내고, 연관되는 자원을 발굴해 연계하고, 사업의 틀을 짜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면 이를 다른 기관에 인계하는 것이 앞으로 재단의 역할이 될 것이다.

앞으로는 사업 추진에 주민의 참여를 적극 권장하고자 한다. 이제 그럴 만큼 주민도 의식이 바뀌었고, 그래야만 사업의 지속성과 추진 동력이 확보될 것이다.

요즘 주민은 재단 직원들을 만나면 고맙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재단으로선 주민이 고마울 따름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주민의 협조와 이해, 참여가 없었다면 이 사업은 결코 오늘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돌을 맞는 재단으로서는 첫 해에 크나큰 학습효과와 귀중한 교훈 그리고 가슴 가득한 행복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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