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윤석 대전평화방송 사장

우리는 얼마 전 성탄절을 보냈다. TV에서는 세계 각국의 성탄절 표정을 생생하게 보여 주기도 했다. 신자들은 미사를 지내면서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하했으며 다른 이들은 들뜬 기분에 거리를 방황하거나 술집에서 축하했다. 아마 어느 누구도 이렇게 성대하게 생일축하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념·인종·문화·전통 등이 달라도 그 어느 민족도 예외없이 예수님의 생일을 축하했다. 이처럼 예수님이 전 세계에서 생일 축하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분이 우리의 구세주이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들이 인정하든 안 하든간에 구세주인 것만은 틀림없다.

성탄의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신약성서의 성탄에 관한 성경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지존하신 분께서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이 되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였다(요한 1, 14∼18). 고로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은 지존하신 하느님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되셨다. 우리는 현재 수준에서 한 단계 낮추기도 어렵다. 자전거 타던 사람은 걸어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또 36평 아파트에 살던 사람이 23평 아파트에 살기가 어렵다. 이렇게 인간들도 자기의 수준을 한 단계 낮추기도 어려운데 지존하신 하느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사람이 되셨다. 하느님께서 강생하실 때 천둥 번개가 치고 으리으리하고 찬란하게 하늘이 열리면서 수천 수만의 천사들이 나발 불고 호위를 받으시면서 오시지 않았다. 그렇다고 최고급 산부인과 병원에서 태어나신 것도 아니었다. 황공하옵게도 마굿간에서 탄생하셨다. 이런 구세주의 탄생에서부터 겸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너무 높은 데서 놀고 있다. 낮은 데로 임해야 한다. 겸손은 자기 비하가 아니다. 끝이 처음이 되는 기본 조건이다.

둘째,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태어나셨다(루가 2,1-20). 정말로 그 당시 방이 꽉 차서 그랬을까? 어떻게 아기를 출산하는 산모에게 빌려줄 방도 없었을까? 참으로 고약한 인심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어야 한다. 이기심, 불신, 증오, 거짓, 지나친 물욕 등으로 가득차 남을 배려할 수 없다면 방을 양보하지 않은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
참으로 고약한 인심이다.어떤 책에 나온 '1006개의 동전'이란 글을 소개한다. 시각장애인 남편이 딸과 아내를 두고 저세상으로 떠난 뒤 딸도 시력이 나빠져 실명할 위기에 놓여 있었다. 아내는 딸을 위해 구걸을 나갔다. 사회복지사가 이 집을 방문했을 때 아주머니는 수북히 쌓인 동전을 내놓으며 "제가 구걸을 하면서 1000원짜리는 생활비로 사용하고, 500원짜리는 딸의 수술비를 위해 저축하고, 100원짜리는 나보다 어려운 노인 분들을 위해 사용하려고 모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동전은 총 1006개, 즉 10만600원이었다. 복지관의 후원자 가운데 10만원 넘는 돈을 후원해 주는 경우는 많이 있었지만 이렇게 정성스럽게 모아 준 돈은 없었기 때문에 복지사는 10만600원이 아닌 1006개의 동전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이 이야기를 읽다 보니 이런 말이 생각난다.

'남에게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을 만큼 부자도 없고, 남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다.'

성탄절의 의미와 해야 할 일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인정하는 것이다. 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인생살이에는 할 일도 많다. 특히 소홀히 하기 쉬운 인생, 죽음, 고통, 행복, 죽음 후의 삶 등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해법을 그분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 분은 인간의 이런 근본적인 난제들을 속 시원히 해결해 주신 해결사이시기 때문이다.

계미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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