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본사 회장

지난주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우리 지역의 존경받는 원로 한글학자 유동삼 교수와 자리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유 교수는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TV마다 걸핏하면 청와대 모습을 비추고 있는데 왜 청와대 뜰에는 태극기가 없느냐고 물었다. 유 교수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청와대에 태극기를 본 기억이 없다. 북한산 아래 자리잡은 청와대, 그 푸른 기와와 적막한 뜰, 그리고 소나무들만 TV에 비쳐지지 않았는가? TV에서 보는 미국의 백악관은 지붕 꼭대기에서 힘차게 펄럭이는 성조기가 있는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한가.

물론 청와대에도 국기게양대가 있어 태극기가 걸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곳에 있는 태극기가 아니라 청와대 지붕이나 정면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힘찬 기상을 우리 국민은 물론 전 세계에 보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지금의 청와대 자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 때문이다.

청와대 자리는 어떤 곳인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史實)이지만 일제는 처음엔 우리 임금이 있는 경복궁을 정면에서 감시할 수 있는 남산에 통감부와 총독관저를 두었고 얼마 있지 않아 아예 왕기(王氣)를 누르고 식민통치를 자행하기 위해 북한산 중턱에 터를 닦아 총독관저를 그리고 경복궁에는 총독부 청사를 세웠던 것.

그러나 해방이 되고 대한민국이 건국됐지만 총독부는 중앙청으로, 총독관저는 대통령이 집무하는 경무대로 그냥 사용돼 왔었다.

중앙청은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으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시절, 철거됐지만 청와대는 역대 대통령들에게 지속적으로 비운을 안겨 주고 있다.

4·19 혁명으로 쫓겨난 대통령, 부하의 총을 맞고 비운에 간 대통령, 아들이나 자신의 부패로 구속되거나 자신이 직접 교도소를 다녀 온 대통령 등 퇴임하고 나서 상처 입지 않은 대통령이 없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의 비운을 풍수지리학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바로 청와대 터가 좋지 않다는 것.

이 같은 학설은 과학적으로나 정치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지만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합리적인 대안이 등장했다. 수도를 충청권으로 옮기겠다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정부가 충청권으로 옮길 수 있을까, 후보지는 어디일까, 옮긴다면 몇 년이나 걸릴까 하는 이야기들은 수도권 이전에 대한 논쟁은 대전을 중심으로 한 충청권뿐 아니라 서울 시민들 사이에서도 끝없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본만 해도 수도를 이전키로 결정하고도 14년이나 허송하고 있는 현실, 브라질이 수도를 이전하고 10여년이나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사례, 엄청난 이전비용,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여러번 논의만 되고 흐지부지된 과거 등등으로 많은 국민들이 수도 이전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러기에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그의 공약에 대한 신뢰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수도 이전보다 청와대부터 옮기는 계획을 발표하는 게 좋다.

국회나 사법부, 행정부를 옮기는 것보다 시간과 설계, 경비 모든 게 가장 손쉽고 무엇보다 노 당선자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중 감옥' 같은 서울의 과밀화를 해소하고 지방분권화를 이루기 위해서도 그것은 서둘러야 할 과제다. 그 청와대 후보지는 3군 본부가 있고 정부 외청이 있는 대전이 최적지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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