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철 대전복지재단 대표

복지라고는 수십 년 전 복지관에서 야학교사를 10여 년 한 것과 지난해 동네 복지관에서 초등학생에게 한자를 가르친 경험밖엔 없는 필자가 대전복지재단 초대 대표이사로 온 지도 일 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을 회상해 보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 1년’이었다. 평생 공무원만 상대하며 살아온 필자로서는 생각보다 훨씬 생소한 분야에서 많은 일을 겪었고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사실 복지재단이 처음 출범했을 때 분위기는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재단 설립을 위해 한 해가 넘게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재단의 위상과 역할, 업무영역의 중복에 대한 우려는 논리적으로만 정리되었을 뿐,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완전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아니나, 시간이 지나면서 관련되는 모든 이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점차 나름의 뚜렷한 모습을 갖춰나가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걸 자연 상태에 맡겨 놓을 수는 없을 것이고, 지향하는 목표 지점은 있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재단의 역할에 대한 기본입장은, 재단은 다른 기관이나 단체에서 하지 못하는 부분, 안 하는 부분을 찾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재단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그런 분야를 찾아 그 부분을 메꾸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단은 복지관이 아니다’라는 것을 늘 명심하면서, “이 일을 재단 말고 다른 데서는 할 곳이 없는가?"라고 자문(自問)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입장 하에 구체적인 재단의 역할은 지원자와 연결자, 조정자, 통합자이다. 민과 관, 민과 민의 역량을 연계해 극대화하고, 현장의 시설이나 인력의 전문성을 증진시키고, 현장에서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매일 매일의 업무에 빠져 교류나 협조에 익숙하지 못한 사회복지분야 인사를 자주 만나고 교류하고 협의하게 만드는 것 또한 재단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재단은 앞장 서는 기관이 아니라 뒤에서 돕고 밀어주는 기관이다.

재단은 일을 하면서는 항상 현장과 시민에 귀를 열어야 한다. 현장에서 필요한 일, 시민을 위한 일을 해야지, 재단이 필요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현장과 시민과 소통하고 대화해야 한다.

필자는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동업자’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다소 거칠어 보이는 이 단어는 필자가 공무원 시절에도 자주 썼던 단어이고,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소속은 달라도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이니만큼 동류의식을 갖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동업을 하려면 의사소통에 막힘이 있어서는 안 되니 서로 끊임없이 교류하고, 생각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필자가 처음 재단에 왔을 때, 가장 시급하다고 느낀 것은 재단과 사회복지계와의 신뢰형성이었다. 재단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별로 사교적이지 못한 필자이지만 기회가 닿는 대로 현장을 찾았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재단 혼자가 아니라 관련되는 단체나 현장과 대화하고, 함께 하려 했다.

한 해가 지난 지금 설립 초기의 재단에 대한 의구심은 이제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고 감히 자평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맨 땅에 한 해 동안 헤딩을 하고 있으니 머리도 아프지만, 땅도 조금씩은 갈라지는 것 같아 나름 보람을 갖고 희망을 갖고 오늘도 헤딩을 계속한다. 모쪼록 복지재단이 빠른 시일 내에 자리를 잡아 우리가 모두 꿈꾸는 ‘누구나 살고 싶은 따뜻한 복지도시 대전’을 이루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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