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 보르도(왼쪽)와 부르고뉴 와인.
1950년대 이후 궁핍하던 가운데 부족한 식료품, 식재료로 풍성한 맛을 낼 수 없던 당시 '미원'은 긴요한 조미료의 대명사였다.

지금은 경원하는 화학조미료로 천덕꾸러기 신세지만 그 당시에는 음식조리의 필수 품목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우리 언니 뽐내는 요리 솜씨도 알고 보니 미원 미원이지요….'로 시작되던 CM송은 생활 속에 뿌리내린 화학조미료의 위상을 보여준다.

미원은 일본제품 아지노모토와 유사한 명칭, 성분으로 광복 이후 시장을 선점하여 오래 전성기를 구가했다. 라이벌이 거의 없던 시장에서 화학조미료의 대명사가 되어 그 뒤 요식업소에서 사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난 뒤에도 이름만은 조미료의 대명사로 여전히 남아있다.

1960년대 이에 맞서 '미풍'이라는 제품이 시장에 뛰어 들었다. 대기업의 물량공세와 집요한 선전에도 불구하고 미풍은 결국 미원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물러났다. 비슷한 성분이지만 소비자의 뇌리에 각인된 미원이라는 브랜드는 소비자 충성도를 오래 지속시켜 주었던 것이다.

선점제품을 추월하기 위한 후발주자의 치열한 마케팅은 라이벌간의 수성과 탈환의 구도 속에서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품질과 가격 그리고 소비자 서비스 측면에서 라이벌 제품 간의 피나는 각축은 유통구조와 가격, 품질개선 차원에서 긍정적인 선순환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굳이 특정제품이 아니더라도 지역을 근거지로 하는 특정산업의 라이벌 구도 역시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고 있다.

오늘날 프랑스 와인의 명성을 구축한 부르고뉴, 보르도 두 지역의 오랜 라이벌 관계는 이런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동서로 나뉜 위치상 대립과 높은 긍지도 그러하고 산비탈 잘게 나뉜 다양한 토질, 드넓은 포도밭과 광활한 구릉지대, 단일 포도품종, 적어도 2-3가지 포도를 혼합해서 생산하는 전통으로 부터 해당 와인을 선호하는 마니아층의 뚜렷한 대비, 특징적인 병모양<사진>에 이르기까지 부르고뉴와 보르도 와인은 경쟁과 협력을 통하여 수백 년 독특한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기업 간의 상호비방, 덤핑공세 같은 소모적인 라이벌 관계를 넘어 업종, 지역 간의 거시적이고도 긍정적인 경쟁관계를 만들어 함께 성장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논설위원·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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