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 대전시민사랑협의회 회장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각 지방정부는 중앙과 차별화된 발전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전을 방문한 외지인들이 ‘대전은 깨끗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보인다’고 후한 평가를 할 때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랑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러나 ‘깨끗하고 살기에 편안할 것 같다’는 것은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복잡하지 않고, 시골보다는 문화적 여건이 나아 보인다는 평가라고 생각된다.

대전이 서울보다 규모는 작지만 뛰어난 개성과 문화적으로는 더욱 세련돼 국제적인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다면 더욱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대전은 과거 지리적으로는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역에 있었지만, 문화적 기반은 백제권으로 볼 수 있다. 백제는 해양강국으로 중국의 연안뿐만 아니라 동남아 지역과도 활발하게 교류해 일본의 고대국가 성립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등을 볼 때 신라와 고구려와는 다르고 중국과도 차별화된 독자적이고 수준 높은 문화를 이뤄냈다.

과거 역사적인 상황을 현재와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겠지만, 지금의 대전시 인구와 경제력의 규모 등을 백제의 국력과 비교해볼 때 대전의 역량이 백제보다 훨씬 우월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대전이 독자적으로 고유한 문화적인 특성을 형성하고 국제 교류나 문화전파에서 백제보다 우수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유보적일 수밖에 없다.

대전은 자치행정을 하고 있으며, 훨씬 발전된 과학기술과 경제력, 집중된 인구를 가지고 있음을 볼 때, 이에 관해 새로운 관점에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마침 대전시는 대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시정의 아젠다를 외지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도시'로 정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시정 기조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어서 아젠다로 삼기에는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이 평범함에 행정의 본질과 핵심이 담겨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것은 먹이 많은 곳에 물고기가 모이듯 경제와 교육,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매력적인 요소를 창출해 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이 모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도시환경을 세련되고 쾌적하게 가꾸는 것이다. 서울시가 '디자인 도시'라는 정책을 내놓고 의욕적으로 도시환경정비 사업을 추진했지만, 정치적인 셈법 논란을 빚으며 결실을 보지 못했다.

필자는 서울시의 시도가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본다. 미국의 소도시인 콜럼버스시가 건축이 아름다운 미국 7대 도시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나 외국의 유명 관광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결국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며, 이는 세련성과 매력이 있는 쾌적한 환경에 기인한다. 건축과 도시환경은 시민의 삶은 물론 모든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대전이 가진 자연환경과 도시공간을 개성 있고 세련되게 가꿔 낸다면, 대전은 안정적으로 외지인들이 모이는 곳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도시 환경을 쾌적하고 세련되게 구축하는 일은 일회성 이벤트처럼 행정당국이 주도할 일이 아니다.

아무리 행정력이 넘쳐도 시가 도시 전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는 시민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고 지원하면서 시민 각자가 스스로 세련성을 갖도록 시민의식을 높여가야 한다.

다만 이러한 과정은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전시가 개성 넘치고 문화적 세련성이 깃든 도시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뚜렷한 역사의식을 갖는다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도시'라는 시정 방향은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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