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이 다 되도록 남긴 생채기
이제 국회특위에서 매듭지어야
‘제2 태안의 기적’ 이뤄낼 때다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지 5년이 가까워오지만 피해 어민들에게 드리워진 ‘트라우마’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사고 당시 삶의 터전인 서해 일대를 몽땅 집어 삼켰던 시커먼 공포가 여간 심각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어느 날 갑자기 생계 수단이 망가진 그들의 가슴엔 그렇게 피멍울이 맺힐 수밖에 없었다. 공황상태에 빠져 목숨을 버린 사람도 나왔다.

그나마 이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심어준 것은 자원 봉사자들이었다. 전국에서 몰려든 123만 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이 인간 띠를 구축, 양동이와 삽을 들고 기름 띠 제거 작업을 벌였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흡착포로 모래, 조약돌, 바위를 일일이 닦아냈다. 살을 에는 듯한 맹추위 속에서도 이들의 구슬땀은 더욱 빛났다. 이들의 숭고한 봉사정신은 ‘태안의 기적’을 일구어 낸 감동 그 자체이었다.

하지만 그런 열망을 끝까지 가슴에 담아내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당시 온 국민의 성원에 힘입어 서해안 일대가 고통과 절망을 딛고 치유와 희망의 단초를 찾아 나선 건 분명했지만 그 의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은 정작 따로 있었다. 비록 서해 앞바다가 겉으론 종전 모습을 되찾는 듯 했지만, 사고 현장엔 여전히 피해자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피해규모에 합당한 배·보상이 이뤄지는 게 당연하지만 그러질 못했기 때문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화해를 이끌어내려는 진정성을 그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화해와 관용, 그리고 통합의 가치를 실현시키기엔 너무나 그 간극이 크고 넓다. 여러 절차도 매끄럽지 못하고 그럴수록 피해 어민들의 마음만 답답해질 따름이다. 사고 개요는 비교적 단순하다. 정지해 있던 유조선 허베이 스프리트호를 삼성중공업 소유의 예인선단이 충돌함으로써 유조선에 실려 있던 원유가 유출된 사고다. 그렇다면 책임의 소재도 뻔하다.

급기야는 지난 10일, 신임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던 날 서해안 유류피해 주민들이 국회를 찾아가 성명서를 발표하고 고영한 대법관 후보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고 후보자는 서울중앙지법 파산 1부 부장판사로 재임하던 2009년 3월, 태안 기름 유출 사고 재판에서 삼성중공업의 배상책임을 56억 원으로 ‘책임 제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어민 1인당 5만 원꼴도 안 되는 액수이다.

그 뿐이 아니었다. 사건이 3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처리돼 ‘삼성 봐주기’ 판결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심문 한번 거치지도 않았다. 고 후보자는 이에 대해 “피해자들이 조금이나마 변상을 빨리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랬다고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유조선 허베이 스프리트호를 재판할 때는 1년의 시간과 2차 심문기일을 거친 것과는 사뭇 대비된다. 상법의 ‘선박 소유자 책임제한’을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을 빚고 있다.

피해 어민들이 걱정하는 건 매사가 이런 식으로 가해자임에도 국가권력으로부터 비호를 받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로 “우리처럼 힘없는 피해민들의 아픔이 대법원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꼭 피해의식의 발로에서 비롯된 일들이라고 치부할 일은 아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한다.

그런 가운데 삼성 측은 여전히 지역발전협력기금 출연금 1000억 원 이상은 내놓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멕시코만 기름유출사고에서 영국 BP사와 미국 정부가 보여준 사례는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법적인 책임을 따지기에 앞서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도의적·사회적인 책임성은 실로 막중하다.

이제 눈길은 국회에 쏠린다. 국회 차원에서 ‘서해안유류피해보상특위’의 활동을 앞두고 있는 터라 정치권의 수습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피해 배·보상을 위한 법적인 절차 이외에도 생태계 복원, 피해주민 건강검진 등을 위한 정책적 배려를 총체적으로 점검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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