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삼래 공주대 교수

시간은 유수와 같다고 했던가?? 한 달에 한 번씩 떼어 내던 달력도 어느덧 2장만 남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구실 앞 숲에서는 시끄러울 정도로 매미가 울고 나뭇잎들도 푸르름을 자랑하더니 이제는 정막감과 함께, 가을 손님인 귀뚜라미도 마지막 힘겨운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부지런한 기러기 떼들은 벌써 철새도래지에 날아와 겨울 준비를 서두르고 있으며 나뭇잎들은 형형색색 단풍으로 변해가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계절의 반복을 벌써 50번째 맞이하고 있지만 맞이하는 계절마다 새롭고 반가우며, 단풍 드는 가을은 특히 더욱 정겹다.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이 같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필자는 며칠 전 회의 참석을 위해 서울의 덕수궁 근처에 갔다가 회의 참석 전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처음으로 덕수궁 돌담길을 홀로 걸어 본 적이 있다.

이곳의 은행나무나 단풍나무 그리고 느티나무의 잎들도 곱게 물들어 있었고, 하나 둘 낙엽이 돼 떨어지고 있었다. 재잘거리며 지나가는 여고생들, 쌍쌍이 거니는 연인들, 그리고 머리가 백발이 된 노인 부부 등…. 각각의 경우에 있어서 이 가을 단풍은 각각 다른 정감으로 다가 올 것이다. 젊은 연인들에게는 고운 장밋빛 인생설계가 연상되겠지만 노부부들에게는 그의 인생을 뒤돌아보게 하는 추억의 낙엽이 될 것이다.

필자도 과거 감수성이 있었던 학창 시절에는 무척이나 가을을 좋아했으며 때로는 가을을 보내기가 힘들 정도로 마음앓이를 한 적도 있었다. 낙엽 쌓인 공원길 걷기를 특히 좋아했고 지금도 낙엽을 밟으며 걷는 것을 좋아한다.

자연생태계는 참으로 정교하게 계획된 기계처럼 설계됐고 쓸모없이 돌아가는 바퀴는 없다. 즉, 지구상의 모든 식물은 뿌리를 통해 땅에서 필요한 양분을 섭취하고 빛을 이용해 유기물인 녹말을 만든다. 식물이 광합성으로 만든 영양분을 사람은 물론이고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이 이용하고 있다. 낙엽은 바로 이러한 양분을 공급하고 있는 과정의 일부이며 정교한 생태계의 한 바퀴이다. 식물의 잎이 이렇듯 잠시 푸르게 살다가 낙엽이 돼 떨어지지만 결코 헛되지 않게 뭇 짐승들을 먹여 살리는 순교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자연생태계에 인간들의 어줍잖은 생산물인 플라스틱, 종이 그리고 비닐 등이 쓰레기가 돼 뒹굴 때 기분이 좋지 않음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의 경우는 길에 낙엽이 뒹구는 것은 참으로 보기가 좋게 느껴진다. 특히 낙엽을 밟는 촉감은 그 어떤 양탄자를 밟는 것보다 촉감이 부드럽다. 또한 낙엽은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분해돼 토양의 거름으로 이용된다. 어쩌다 모아진 낙엽을 태우면 그 타는 냄새 또한 구수하다. 어떤 이는 낙엽 타는 냄새를 갓 볶아 낸 커피 냄새와 같다고 했다. 그러나 플라스틱이나 비닐은 쉽게 분해되지도 않고 태울 때면 역겨운 냄새는 물론, 다이옥신도 들어 있어서 암 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만약 낙엽이 없다면 우리의 자연환경은 사막처럼 건조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점은 많은 이들이 떨어지는 낙엽을 쓰레기처럼 취급한다는 것이다. 자연생태계에서의 낙엽은 결코 쓰레기가 아니다. 지구상의 많은 생물에게는 훌륭한 양분이며 시인에게는 가슴 울리는 시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황혼의 노부부에게는 훌륭한 추억의 앨범이며 때로는 고급호텔의 양탄자보다도 푹신한 카펫이 된다. 올 가을엔 낙엽을 쓸지 말고 밟아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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