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원 대전충남경영자총협회 회장

학교는 가정과 더불어 인간이 성숙한 인격체로 자랄 때까지 다채로운 교육을 담당하는 곳이다. 기본적인 인성을 교육하는 것은 물론이고 실생활에 유용한 학문을 교육하기도 한다. 정규 과목을 통한 교과에서 배우는 이론은 물론 각종 클럽활동이나 단체수련활동 등을 통해 배우고 익히는 모든 것들이 훗날 사회인이 돼 직·간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교육은 산업현장에서 바라볼 때 지극히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문제점을 노출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과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학생들이 다른 나라의 몇 곱절에 이르는 학습량을 요구받는다. 학교에서의 정규 교육이 모자라 학원교습을 받는 것이 일반화 돼 있다. 그것도 모자라면 개별 과외를 통해 보충학습을 하게 된다. 실로 엄청난 학업 부담을 안고 유소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중고생이 되면 공부를 이유로 웬만한 가족행사에 참석하지 않아도 이해되는 정도이다. 고3이 돼 대입공부를 할 때는 고생한다는 이유로 집안의 최고 어른도 받지 못하는 대접을 받기도 한다.

문제는 이토록 엄청난 학습을 받고도 정작 사회에 투신해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정작 기업이나 기관에서는 이들이 학교교육을 통해 배운 것들이 즉시 이용될 수 없다는 점이다. 대개의 기업들은 각기 필요한 분야의 인력을 채용하면서 관련 분야를 전공자를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전공(專攻)이란 말이 무색하게 그들이 가진 지식이나 기술은 현장에서 쓸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기업은 채용한 인력을 대상으로 백지상태부터 새로운 교육을 하게 된다. 어느 분야랄 것 없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산업 현장에서 곧바로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모순이 아닌가. 세계에서 가장 극성스러운 교육열을 자랑하는 이 나라가 정작 사회에서 활용할 수 없는 지식과 기술을 가르쳤다는 것이니 말이다. 산업현장에서 활용할 수 없는 학교교육의 문제점이 지적된 것은 한두 해 전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면서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학습을 하지만 정작 사회에서 활용하지 못하고 있고, 기업들은 급여를 지급하면서 교육을 해야 하는 모순된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이 모순된 구조를 하루 속히 깨뜨려야 한다.

기술선진국 독일의 경우, 실업학교는 물론이거니와 학사, 석사,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대학교육 전반에 걸쳐 기업에서의 현장 실습이 필수사항으로 법제화 돼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학교교육이 기업의 현장교육과 맞물려 진행되면서 별도의 현장 교육 없이 곧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학생들이 막연하게 갖는 사회와 직장에 대한 불안감을 불식시킬 수 있으니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아울러 현장의 생리를 보다 빨리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게 해주니 이 또한 이점이다.

지나친 학벌지상주의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마이스터고를 비롯한 각종 특성화 고교 시책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남 하니까 나도 한다’식으로 목적의식 없이 대학에 진학하는 풍토는 분명 이 사회의 잘못된 일면이다. 더불어 학력수준이 높을수록 현장 경험이 오히려 더 없는 희귀한 현상도 개선돼야 할 문제점이다. 현장은 예상치 못한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는 곳으로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사고력을 키우는 것은 직접 부딪혀보고 경험하는 것 외에는 더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

정작 고학력자라고 하지만 현장 적응 능력이 없고,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 대처할 능력도 없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그 사람이 얼마나 탁월한 능력을 익혔고 활용할 수 있느냐의 여부보다는 그가 가진 학벌을 따지고 스펙을 따지는 문화 때문이다. 산업 현장에서 수십 년을 겪은 경험에 의하면 우리 사회는 뼛속까지 깊이 박힌 ‘사농공상’의 서열화 의식이 아직도 잔존하고 있다. 학교 스승은 존경하면서 정작 보다 리얼리티 있는 교육을 담당하는 직장 상상에 대해서는 존경할 줄 모르는 풍토도 개선돼야 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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