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수기공모 대상작-연기군 손곤 씨]
‘알뜰살뜰 우리가족 가계부(내조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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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다문화가족정책연구원이 주최하는 다문화수기공모대회가 올해로 3회 째를 맞았다. 이번 다문화수기공모대회는 4월 15일부터 5월 31일까지 공모됐으며 전국에서 답지한 많은 응모작들 가운데 중국 출신의 이주여성 손곤(34·충남 연기군) 씨가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손곤 씨의 출품작은 ‘알뜰살뜰 우리가족 가계부(내조의 여왕)’. 이 작품에서 손곤 씨는 열악한 생활 환경 임에도 불구하고 시부모 봉양, 가사, 양육 등 1인 다역을 해낸 상황을 그려냈다. 특히 손 씨의 알뜰하고 강한 생활력, 경제 노하우 등이 잘 녹아있어 좋은 평가를 이끌었다. 손 씨의 수기는 연말에 발간되는 한국다문화가정정책연구원의 다문화여성 수기공모대회 수상작품집에 수록될 예정이다. 다음은 손 씨의 작품 내용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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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친정이 중국인 손곤이라는 다문화가정 주부입니다. 2004년 한국에 와서 대학교를 다니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결심하고 혼인신고를 하였을 당시 시부모님은 전라남도 땅끝 마을 해남에 살고 계셨습니다. 남편은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생계수단 없어 해남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외국인이다 보니 시집살이를 하는데 갈등도 있었지만 그래도 개방적인 우리 시부모님 덕분에 저를 항상 예뻐해 주시고 이해해 주셔서 크게 문제없이 잘 지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 후 남편은 육군 부사관이 되기 위해 군 입대를 하였습니다. 결혼 전에도 남편이 직업군인이 될 거라는 것을 알고 마음준비는 하였지만 막상 군대를 보내고 6개월간의 기초군사 훈련과, 자대에서 영내대기 6개월을 했던 1년 동안 홀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지내다보니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로 밤을 지샌 날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이 사랑스런 큰 딸 혜찬이가 태어났습니다. 군대간 지 1년이 지나고 마침내 남편이 근무하는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를 했는데, 남편은 부모님께 신세지지 않고 스스로 자립한다고 부모님께 돈을 얻어서 집을 얻지 않고 부대 옆에 35년이 넘은 4층짜리 15평 군인관사에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건물이 워낙 오래 되어서 단열은 아예 되지도 않았고 보일러를 떼면 바닥은 뜨겁지만 이불을 덮고 누우면 입에서는 입김이 나오고 벽면은 결로 현상으로 물방울이 생겨 벽지에 곰팡이가 피기 일쑤였습니다. 창문 또한 샤시가 아닌 나무 창틀이어서 다 비틀어지고 틈이 생겨 겨울에는 찬바람을 막기 위해 창문틀에 비닐을 치고 살았습니다.

화장실은 1평정도 되었는데 바닥은 타일이 아닌 그냥 시멘트로 되어있어 매일 거멓게 생기는 곰팡이를 솔로 문질러야 했습니다. 비록 생활환경은 정말 열악하였고, 남편은 제게 고생시킨다고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었지만 저는 남편에 대한 존경과 사랑으로 견디며 꿋꿋하게 살았고 그사이 사랑스런 둘째 딸 다혜가 태어났습니다. 그렇게 군인관사에서 어렵게 살면서도 저희는 그 어느 가정보다 행복 했습니다. 그 이유는 서로 외적인 모습보다 내면에 대한 부부간의 사랑이 확고하였기 때문 입니다. 오랫동안 저와 떨어져 있어서 늘 미안해하고, 스스로 힘들어 했던 남편에게 저는 항상 '내 걱정은 전혀 하지 말고,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용기를 주었고 남편은 저의 내조 덕분에 부사관 학교에서 349명중 1등으로 자랑스럽게 임관 하였습니다. 상으로 받은 육군참모총장님 메달을 그 동안 고생했다며 이것은 당신의 것이라고 저의 목에 걸어주던 제 남편의 그때 모습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합니다. 또한 초급반 교육(헬기정비)역시 3개월간의 교육기간 중 16명 중에 1등으로 수료를 하였습니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비행기를 좋아하고 비행기 조종사의 꿈을 품고 살아왔었습니다. 조종사라는 직업이 위험하다는 걸 누구나 다 알 것입니다. 남편이 하겠다는 것을 막무가내로 반대하진 않았지만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이니까, 또 항공 준사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최대한 집안일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퇴근 후 바로 집 근처 도서관에 보내놓고 저 혼자 낮에도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하여 고단하였지만 저녁에 잠이 들 때까지 아이들을 돌보며 1년을 거의 얼굴도 못보고 지냈습니다. 후에 남편에게 들은 얘기인데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에 오면 아이들 틈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저를 보며 눈물 흘린 적이 아주 많았다고 했습니다. 재수하면 저 또 1년 동안 고생시켜서 안 된다며 꼭 열심히 노력해서 그 동안 노력한 거 보상해 주겠다고 하더니 모집시험에 응시하여 단 한번에 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년에 딱 10명만 선발하는 육군항공 준사관 시험에 합격 하였고 그 중에서도 비행 성적이 가장 뛰어나 10명중 2명만 받을 수 있는 UH-60P(블랙호크) 헬기 조종사 교육을 받았습니다.(블랙호크는 엔진이 2개 있어서 그나마 덜 위험 합니다.) 2010년 7월 9일 10개월간의 조종교육이 끝나고 준위로 임관 할 때까지 어쩔 수 없이 또 주말 부부를 했지만 처음과 변함없이 사랑하며 그리움을 참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남편은 무엇보다도 저의 알뜰하고 강한 생활력이 제일 대견하다고 생각한답니다. 우리는 비록 생활환경은 열악하지만 항상 아껴야 잘 산다는 신념을 가지고 한 푼도 흩어지게 쓴 적이 없습니다. 물을 한 방울이라도 아끼기 위해 화장실 변기의 저수통에 2리터 물병을 넣고 쓰고 샤워할 때는 따뜻한 물이 나오기 전까지 찬 물을 받아 그물로 걸레를 빨고 그럽니다. 육체적으로 조금 힘들지만 언젠가 우리도 남부럽지 않게 잘 살 거라는 긍정적으로 생각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주부들이 조금만 계획을 세워서 살림을 한다면 일을 안 해도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저의 경제 노하우를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세금을 한 번도 늦게 낸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내야 할 것인데 연체료가 아까워서 항상 미리 냅니다. 은행 수수료도 물론 낸 적이 없습니다. 마트 포인트 적립은 빠짐없이 합니다. 옛날에는 마트에 갈 때 포인트 카드를 가지고 가야 해줬었는데 가끔 깜박 잊어버리고 카드를 안 가져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5000원 이상은 소비하지 않고 꼭 필요한 것만 샀습니다. 지금은 회원번호만 부르면 적립이 되니까 훨씬 더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현금으로 살 때 1프로 적립해 주고 카드로 계산하면 0.5프로를 적립하는 것을 알고 나서 마트 갈 때는 웬만하면 현금으로 계산합니다. 물론 현금영수증도 꼬박꼬박 받습니다. 카드회사에서 날아온 쿠폰도 잘 활용하여 며칠 전에도 저의 큰 딸한테 어린이날 선물로 운동화를 사줬습니다. 남들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외식하지만 저희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외식합니다. 그런다고 해서 아예 안 먹는 게 아니라 인터넷에서 요리법을 배워 집에서 해 먹습니다. 음식점보다 맛은 덜 있겠지만 위생적인 면으로 생각하면 건강한 식생활을 지킬 수 있으니까 괜찮습니다. 또한 저희 가족이 불만 없이 잘 먹어 줘서 항상 고마울 따름입니다.

요즘에 에너지 낭비가 너무 심해서 지구 환경이 점점 파괴되어가고 있고 우리의 후손을 생각하면 환경오염 시키는 행동을 자제해야 하는데 아직은 인식이 부족합니다.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단수의 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물이 없으면 얼마나 불편한지 알고 물의 소중함을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저의 집은 쓰지 않는 콘센트는 항상 뽑아 놉니다. TV에서 컴퓨터를 쓰지 않고 코드만 꽂아 놔도 전기가 조금씩 흐른다는 것을 봤습니다. 그 뒤로 저는 항상 코드를 확인하는 반면에 남편은 가끔 깜빡깜빡합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뒤에 쫓아다니면서 잔소리를 했더니 참다 참다 어느 날 남편이 폭발해 한번 크게 싸운 적도 있었습니다. 맨날 치약 조금만 짜라, 컴퓨터를 껐냐? 코드를 뺐냐? 물티슈를 반을 찢어서 써라...등 잔소리가 심했습니다. 크게 한번 싸우고 난 뒤로 버릇이 하루 이틀이 고쳐지는 것도 아니고 생각해 보니 제가 남편한테 너무 심했던 거 같아서 그냥 제가 확인하고 아무 말도 안 하고 코드를 뺍니다. 저는 집에서 청소기도 안 돌립니다. 청소를 안 하는 게 아니고 걸레를 깨끗이 빨아서 걸레로만 바닥을 닦습니다. 그러면 청소기 돌린 것보다 더 깨끗이 청소가 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청소를 노동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운동 삼아 스트레이칭 하면서 청소를 합니다. 근데 시간이 쫓길 때 빨리 하느라 무릎에 무리 간다는 것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건 비추입니다.^^ 전자렌지에 해동기능이 있지만 전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 밥을 뭐할 건지 미리 계획하고 미리 꺼내서 녹입니다. 그러면 영양 파괴도 덜 되고 전기세도 아낄 수 있습니다. 또한 저는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갑니다. 운동도 되고 기름 값도 아낄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또 가면서 어디가 세일하는지 탐색합니다. 저는 자가용 타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는 사람이 제일 이해가 안 됩니다. 집에서 헬스장까지 걸어가는 것도 운동이 되잖아요.

여기까지만 얘기해도 '제가 너무 독하고 왜 이렇게 힘들게 살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이것만으로 한 달에 한 3~40만원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자꾸 몇 푼이나 된다고 하지만 10원이 없으면 100원도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고생하지 않으면 행복의 단 맛을 알 수 있을까요? 이렇게 5년을 노력한 끝에 드디어 우리 이름 앞으로 된 아파트가 생겼습니다. 실은 이자가 아까워서 대출까지 받으면서 집을 사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사 오기 전에 군인관사에서 사는 동안 둘째가 자주 아파 10평 월세 집을 얻어 1년 정도 살았었습니다. 만기가 되기 전에 집주인한테 남편이 교육 끝나면 같이 이사하려고 하니 계약 만료일에서 10일정도 여유를 달라고 그랬더니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저 혼자 아이들 데리고 쫓겨났다시피 나온 서러운 추억이 있어 오기로 집을 샀습니다. 물론 무작정 생각 없이 산 것은 아니고 조치원이 나중에 세종시가 되면 아파트 값이 오른다는 전망 보고 결심한 것입니다.

결혼 후 지금까지 아끼고 절약해서 하루하루 살아온 결과는 지금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고 무엇보다 제 의견에 잘 따라 주는 남편이 제일 고맙습니다. 아무리 절약을 해도 한명이 여기저기 돈을 펑펑 쓴다면 허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는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함께 가야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려울 때 서로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세월에서 배웠듯이 저희는 앞으로도 꼭 필요한 곳에만 돈을 쓰고 최대한 아끼고 절약 하면서 생활 할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도 근검절약에 대해서 교육시킬 겁니다.

성공한 남자의 뒤에는 현명한 여자의 내조가 필요합니다. 주부라는 단어는 무식해 보일 수도 있지만 여자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해주지 않으면 남자는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계획을 세우고 최선을 다해 생활하며 미래에 큰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언젠가 그 꿈이 현실이 될 겁니다. 저와 제 남편은 먼 훗날 더 풍요롭고 넉넉한 생활을 위해서 지금 젊었을 때 고생은 인생에서 좋은 추억과 큰 밑거름이 될 거라고 확신하며 꿈을 향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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