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문화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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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시인, 작가들이 글 쓰는 작업의 유용한 도구로 등장하면서 나타나는 중요한 변화의 하나는 초고나 수정원고, 최종원고 같은 집필과정의 여러 흔적이 전혀 남게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도 원고지에 글쓰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도 어느 사이 컴퓨터 입력은 글쓰기의 대세, 편리하고 손쉬운 방안의 하나로 굳어졌다. 종이의 수명은 제한이 있다지만 육필원고 첨삭과정을 연구하여 작가, 시인이 보여주는 미세하고 흥미로운 의식변화와 이에 따른 작품의 변모과정 거기서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논점과 테마는 근대 이후 인문학 연구의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 잡아 왔다. 인간연구와 삶의 조망이 거기서 가능하였던 것이다.

작가들의 피 말리는 고통의 산고를 여실히 보여주는 육필초고나 여러 종류의 원고가 오늘날까지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보호받으며 전승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유물, 문화재를 찾기 어려워졌다. 당장 몇 십 년 뒤에는 컴퓨터 파일만 남아 글쓴이는 세상을 떠나도 그가 쓴 글은 사이버 공간을 영원히 떠돌게 되었다. 흥미롭고 불가사의 하기도한 작품 형성과정을 더 이상 추적, 연구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세태가 여기서도 나타난다.

컴퓨터에 '저장'되는 것은 여러 단계 수정과 첨삭을 거쳐 마침내 완성된 최종 결정판이어서 일부러 초벌이나 중간단계 원고를 챙겨두지 않으면 영원히 그 기록은 존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시대는 이렇듯 작가의 창작과정이 커서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간단없이 지워지고 생성되면서 수없이 고치고 새로 쓴 흔적을 말끔하게 정리하는 동안 오로지 마지막 남게 된 최종의 원고만을 보여줄 따름이다.

인터넷의 편리한 기능 뒤에 남는 아쉬움은 창작의 고통, 그 기록이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 말고도 필기력의 쇠퇴, 육필 글씨 쓰기에 대한 거부감, 기록문화에 대한 무관심 나아가 논리적 추리와 사고능력의 저하 등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휴대전화, 차량 내비게이션 장치, 노래방 모니터 등이 나날이 인간 기억력과 인지능력, 두뇌활동을 위축시키고 있어도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런 '위험한 편안함', '바보를 만드는 문명'에 빠져 있어야만 할까. <사진>은 빅토르 위고의 친필 원고와 그림. 이런 자료는 19세기 프랑스, 유럽문화사를 규명하는 중요한 데이터가 된다. <논설위원·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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