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

지난 24일 오랜 산고 끝에 ‘품앗이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품앗이생협)’이 창립했다. 현행 생협법에 의하면 조합을 창립하기 위해는 300명 이상의 설립동의자가 과반수 출석해 출석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서 창립총회에 참석하면서도 혹시 정족수가 미달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솔직히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과반을 훨씬 넘는 설립동의자가 참석한 총회는 시작 전부터 열기가 뜨거웠고, 참석자들의 눈에는 뭔가 중요한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결의가 충만했다.

창립총회에서 나는 잠시 무엇이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았고, 이들의 뜨거운 열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를 생각해봤다. 그 답은 창립선언문에 있었다. 이들은 우선 작금의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글로벌 시장경제,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원리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바꾸어 놓았고, 우리의 삶을 고달프게 하고 지역을 피폐화하고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동시에 이들은 경쟁원리가 아닌 연대와 협동의 원리에서 새로운 길은 찾고 있다. 즉 협동조합을 통해 생명을 살리고, 너와 내가 더불어 사는 행복한 세상, 소비자와 생산자,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공생하는 순환과 공생의 지역사회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품앗이생협은 대전광역시 및 인접 시·군(세종시·연기군·공주시·계룡시·논산시·금산군·옥천군) 일원을 사업구역으로 하고 이 사업구역 내에 거주하거나 근무지를 가진 조합원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지역생협이다.

품앗이생협은 더불어 살아가는 순환과 공생의 지역사회의 실현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동시에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경제 조직이다. 모든 협동조합이 그러하듯이 품앗이생협도 시장 코드와 사회적 코드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가진다. 많은 사람들은 협동조합의 시장코드와 사회적 코드는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실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자신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경제인(호모에코노미쿠스)’이라고 가르치는 주류경제학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본성을 일면적으로만 파악하고, 사람들의 경제행위 뒤에 숨겨진 사회적 관계를 도외시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양면성을 가진다. 즉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과 함께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선한 마음을 갖고 있다. 맹자는 인간이 선하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을 지향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협동조합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경제 조직은 인간의 이러한 이중성을 가장 잘 조화할 수 있는 경제조직 형태이다. 따라서 시장에서의 인간 행위가 사적 이익이나 등가물의 교환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호혜의 원칙에 입각한 경제활동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문화와 경제적·정치적 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품앗이생협이 어렵게 창립했다. 그러나 창립보다 더 어려운 것은 초심을 잃지 않고 사업을 지속하는 것이며, 그 보다 더 어려운 것은 성공하는 것이다. 품앗이생협의 성공 여부를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가.

에베레스트의 사나이 ‘조지 말로리’에게서 답을 찾아보자. 말로리는 명문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의 길을 걷던 중 산이 좋아 등산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했다. 세 번째 등반에 나선 1924년 6월 8일 정상(해발 8850m)의 바로 밑인 해발 8220m의 제6캠프를 떠난 후 신화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가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정복했는지 못했는지에 관심이 많았으나 정작 그는 정상 정복보다는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오른다”고 했다. 조지 말로리의 이러한 열정이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에게 에베레스트 등정의 길을 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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