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피

▲ 이한웅 법학박사·신흥대 겸임교수
흰눈이 소담스럽던 아침이었다. 은세계로 열린 그 아침의 신선함은 발걸음조차 은빛 환희의 세계로 이끄는 느낌이었다.

전화가 있었다는 전갈을 받았다. 근처 외과병원에서 어머니로부터의 전화였다는 짤막한 메모뿐이었다. 아침에 서울에 가겠다고 하시던 어머니 손에 봉투 하나를 들려 드렸던 일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저 병원에 방문하였다가 아들 보고 싶으신 마음에 전화하셨으려니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졌다.

응급실에서 한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빨리 와 보라는 것이다.

자초지종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무뚝뚝하게 수화기를 내려놓는 그 남자의 태도가 수상해 보였지만, '설마'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혈이 낭자한 어머니를 보았다. 응급실 침대를 이미 붉은 피로 적신 상태였다. 치료하던 의사가 "아들이 왔다"고 알리자, 희미한 목소리로 "내 가방을 찾아보거라"고 하시는 것이다. 어머니의 가방 속에는 간밤에 내가 작곡하여 서울에 제출하려던 악보뭉치 봉투가 들어 있었음을 내가 모를 리 없었다.

생사의 기로에서도 자신의 위태로움보다도 아들을 더 염려하시던 어머니다. "네가 빨리 버스를 타면 마감 전에 제출할 수 있지 않겠니"라면서 아들만을 생각하신 어머니다.

벌써 23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그 아침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인해 흘리시던 피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어머니의 곁을 떠날 수 없었던 터라서 오후 늦게서야 빠른 우편으로 응모곡을 우송했다. 그중에 '그 어지신 주의 모습'이라는 제목의 찬송가가 한국찬송가위원회 공모에 당선되었다.

나는 그 곡을 부를 때마다 어머니가 흘리시던 피를 떠올린다. 다른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진한 사랑을 내게 알게 해 준 사연이 담겨 있기에 그 곡을 더욱 사랑한다.

올해는 어버이날 아침, 어머니 가슴에 카네이션 한 송이도 달아 드리지 못했다.

미국에 있는 손녀들을 그리워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모를 리 없으면서도, 바쁘다는 핑계 하나로 그 아침을 어머니와 함께하지 못한 마음이 죄스럽기만 하다.

나의 어머니는 여전히 주기만 하시는 분이시다. 당신의 안위보다는 자식의 안녕만을 기도하는 분이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스캇 펙 박사는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사랑은 자아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의 어머니의 사랑은 한없이 주기만 하는 샘물이다. 피를 흘리면서까지도 자식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그런 사랑인 것이다. 무엇을 기대하셨으랴. 무슨 이익을 바라셨으랴. 오직 하나,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주시려는 어머니. 그 어머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도 적음에 가슴이 미어진다.

인간의 사랑 중에 가장 큰 사랑. 나의 어머니가 베풀어 주신 그 사랑을 이 아침 다시 생각해 본다.
<약 력>

▲1959년 6월 10일 충남 당진군 면천면 출생

▲단국대학교 법학과 졸업

▲건국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수료(법학박사)

▲건국대학교 법학과 강사

▲신흥대학 겸임교수

▲한국찬송가위원회 21세기 어린이 찬송가 개발위원회 실무위원

▲한국비교노동법학회 이사

▲사단법인 한국프랜차이즈시스템학회 이사

▲대한피부미용전문가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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