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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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서울아, 나는 보았다./ 언제나 눈물 없이 지날 수 없는 너의 거리마다/ 오늘은 더욱 짐승보다 더러운 심사에/ 눈깔에 불을 켜들고 날뛰는 장사치와/ 나다니는 사람에게/ 호기 있이 먼지를 씌워주는 무슨 본부, 무슨 본부./ 무슨 당, 무슨 당의 자동차…."

-'병든 서울' 부분

충북 보은 출신 시인 오장환(1918-1951)
충북 보은 출신 시인 오장환(1918-1951)은 여느 월북 작가처럼 1988년까지 우리 문학사에서 멀찌감치 비켜나 있었다.발군의 재능과 활동으로 삶과 문학을 통하여 '천재시인'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운 오장환의 이름은 진보적 리얼리즘이라는 표현으로 각인된다. 식민지 현실을 예리한 통찰의 눈으로 짚어가며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민족의 각성을 촉구한 지사적 풍모에 뛰어난 언어감각이 빛난다.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반대하고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 점에서는 그다지 변별성이 없다. 인습을 비판하고 백성의 자각과 실존의식을 고취한 면에서도 다른 시인, 작가들의 노력과 유사하다. 봉건사회보다 더 가혹했던 식민지 치하 농촌현실을 고발하고 제국주의와 상업자본주의 아래 신음하는 민족의 아픔을 그려낸 점도 그렇다.

오장환 시인의 수월성은 특히 근대도시를 비판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일제강점기 이후 어느새 자본주의에 순응해가며 여기에 유착하여 타락한 삶을 영위하는 부패한 상류계층, 지도층 인사들과 그 터전인 도시를 풍자, 비판한 예술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병상에서 해방을 맞이한 오장환은 광복의 기쁨을 노래하면서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부패한 무리들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어느 시기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체제에 빌붙어 호의호식하는 기회주의자들과 물신숭배의 그늘에서 부패해가는 도시는 나타나지만 오장환 시인이 그려낸 해방 직후 서울, 나아가 대도시의 모습은 바로 지금 우리 현실에 그대로 확대 재생산되어 모습을 드러낸다.

암울한 현실에 비분강개하던 열혈기질 바로 옆에 다음 시처럼 더없이 해맑고 섬세한 서정시인 오장환이 서 있었던 것이다.

울타리에 가려서/ 아침 햇볕 보이지 않네// 해바라기는/ 해를 보려고/ 키가 자란다 -'해바라기' 전부

<논설위원·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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